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대금 지급 기한 단축… 유통업계 “취지와 달리 역효과 우려”

인싸잇=이서호 기자 |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는 기한을 단축하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결됐다. 이에 중소상공인과 입점업체 등 관련 단체들은 법안 재검토를 촉구하고 반발에 나섰다. 자금 회전을 앞당기겠다는 취지와 달리 유통업체의 현금 부담이 커지면서 유통업계 자체에 위기감이 생길 수도 있다는 입장 때문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는 전날 전체회의를 열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처리했다.

 

개정안은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 기한을 상품 수령일 기준 현행 최대 60일에서 35일로 줄이고, 특약매입과 위수탁, 매장임대는 거래와 관련해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에서 20일로 단축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월 1회 정산 시 매입 마감일로부터는 20일 내 대금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다만 대규모 유통업체의 책임 없는 사유로 대금 지급이 어려운 경우에는 기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이 개정되는 배경에는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미정산 사태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이 있다. 유통업체가 경영난에 빠지면 정산을 못 받은 납품업체까지 피해를 입는 구조를 개선해 중소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야는 지급기한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에 함께 공감했지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급기한 단축으로 인해 늘어난 유통업체의 자금 부담이 발주 축소나 거래 중단을 통해 중소업체 등에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나온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제도 변경을 통해 결과적으로 저희가 보호하고자 했던 중소 영세 납품업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역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며 “오히려 발주량이 감소할 수도 있고 저마진 상품이 퇴출되고, 신규 영세 납품 업체 거래가 줄어들거나 아예 단절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단체들도 이번 개정안에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지급 기한을 단축하는 방식이 실제 시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냈다.

 

지급 기한 단축은 납품업체의 유동성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동시에 직매입 유통기업의 운전자금 부담과 상품 매입 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부담이 커지게 되면 유통기업이 신규 상품 매입이나 수요 예측이 어려운 상품의 취급을 보수적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신생 브랜드와 스타트업 제품의 시장 진입 기회 축소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 역시 “정산을 빨리 받는 것 자체를 반대할 기업이나 상공인은 없지만 산업의 거시적 자본 흐름을 무시한 채 기한 단축을 밀어붙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시장 부작용을 낳는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소규모 유통업체와 플랫폼들의 자금 유동성이 급격히 경색될 것”이라며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업체들은 일시적 현금흐름 불일치만으로도 연쇄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해외 사례와의 형평성 문제도 짚었다. 협회는 “미국 아마존과 월마트는 최대 90일 정산 체계를 당사자 간 자율 계약으로 운영 중이며, EU 역시 합의 시 최장 60일까지 유연성을 허용한다”며 “20일과 35일이라는 경직된 잣대는 과잉 규제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남은 국회 절차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전체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개정안이 의결된 만큼,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처리도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