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전혜조 기자ㅣ신세계그룹이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5년간의 동행을 시작했다. 국내 유통기업으로는 처음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에 이름을 올린 신세계는 첫 프로젝트로 프랑스 작가 폴 콕스(Paul Cox)의 작품 336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 2026’ 현장에서 신세계 라운지는 입구부터 눈에 띄었다. 붉은색과 녹색이 강하게 대비되는 폴 콕스의 ‘Diary 16 05 26’를 외벽 한쪽에 크게 펼치고 그 위에 신세계 로고를 배치했다. 행사장을 오가는 관람객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향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한다. 단순한 행사 후원을 넘어 리테일과 예술을 연결하고, 그동안 쌓아온 공간 기획과 문화 콘텐츠를 글로벌 아트페어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라운지 외관과 내부의 분위기는 제법 달랐다. 밖에서는 대형 이미지와 강한 색채가 먼저 시선을 끌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한층 차분해졌다.
신세계는 라운지에서 폴 콕스의 특별전 ‘L'Immensité du Quotidien: The Monumental Everyday’(일상의 무한함: 기념비적 일상)을 열고 ‘Diary’ 연작을 선보였다.
195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콕스는 회화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발레와 오페라의 무대·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콕스가 수년간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과 시간, 빛과 색채를 기록한 ‘Diary’ 336점을 한 공간에 모았다. 연작을 이 같은 규모로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도 직접 현장을 찾았다. 폴 콕스는 자신의 작품이 빼곡하게 걸린 벽면 앞에서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에 응했다. 작품을 살펴보던 관람객들 사이에 작가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잠시 라운지가 북적이기도 했다.
자신의 ‘Diary’ 연작이 한 공간에 대규모로 펼쳐진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작품 앞에서 관계자들과 대화를 이어가거나 전시장을 오가는 관람객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작가의 방문 자체가 이날 신세계 라운지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됐다.
‘Diary’는 같은 크기의 종이에 하루하루 마주한 풍경과 시간, 빛과 색채에 대한 관찰을 기록해온 작업이다. 작품마다 색과 형태는 다르지만 수백 점이 한 벽면에 이어지면서 반복되는 리듬과 작은 변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한 점 한 점의 기록이 모여 작가가 쌓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셈이다.
흰 벽면을 따라 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길게 이어졌다. 별도의 대형 설치물이나 화려한 미디어 장치보다는 작품 자체에 시선을 두도록 한 비교적 담백한 공간이었다.
작품 앞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비슷해 보였던 그림 사이에서도 색과 형태의 차이가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같은 크기의 종이에 매일의 기록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수백 점을 나란히 늘어놓은 모습 자체가 작가가 보내온 시간의 축적을 보여주는 셈이다.
다만 직접 라운지를 한 바퀴 돌아보면 336점이라는 숫자가 주는 규모에 비해 공간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한쪽 벽을 지나 다음 공간으로 옮겨도 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이 같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작품을 차분히 감상하기에는 좋았지만, 신세계가 프리즈 서울 헤드라인 파트너로 처음 선보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다른 볼거리도 기대하게 됐다.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벽면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작품을 한 점씩 들여다보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바라보기도 했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볼 때보다 수십 점이 이어진 벽면 전체를 바라볼 때 ‘Diary’ 연작이 가진 반복과 변화가 더 잘 드러났다.
신세계가 이번 라운지를 그동안 축적해온 ‘공간·콘텐츠 기획 역량을 집약한 곳’이라고 소개한 점을 감안하면 공간 연출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신세계는 이번 라운지를 통해 ‘일상 속 예술 경험’을 제안하고 리테일과 예술을 결합한 새로운 고객 경험을 보여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난해 헤드라인 파트너였던 LG전자의 전시를 떠올리면 분위기의 차이는 좀 더 분명해진다.
LG전자는 고(故) 박서보 화백의 ‘묘법’ 원작 8점에 OLED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를 함께 선보이고 인공지능(AI) 도슨트를 더했다. 현장에는 박서보 화백을 형상화한 실물 크기의 조형물도 설치됐다. 원작과 디지털 콘텐츠, 설치물이 한 공간 안에 어우러지면서 곳곳에서 시선을 끄는 요소가 있었고, 직접 둘러봤을 때도 전시장 전체가 한층 풍성하게 느껴졌다.
다만 두 전시를 단순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박서보의 작품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했던 LG와 달리 폴 콕스의 ‘Diary’는 같은 크기의 화면에 매일의 기록을 쌓아가는 작업이다. 비슷한 형태의 작품이 반복되는 것도 연작 자체의 특징인 만큼, 신세계는 여러 장치를 더하기보다 336점의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는 신세계와 프리즈 서울이 함께하는 5년 프로젝트의 첫 무대다. 폴 콕스의 ‘Diary’ 336점을 세계 최초로 한자리에서 소개하고 작가가 직접 서울을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첫 전시의 상징성은 작지 않다.
앞으로는 신세계가 강점을 보여온 공간 기획과 문화 콘텐츠가 프리즈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더해질지도 관심을 모은다. 신세계가 남은 4년 동안 프리즈 서울에서 어떤 색깔의 공간을 만들어갈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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