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헌재 “외국인 아동도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할 권리”… 국적, 체류자격 부여는 아니다

부모 국적·체류자격 관계없이 국내 출생등록 가능 법 마련해야
헌재, ‘진정입법부작위’ 32년 만에 두 번째 위헌 확인… 9명 전원일치
국회 계류 법안 6건…“출생등록이 국적·체류자격 부여 의미는 아냐”

인싸잇=임종옥 기자ㅣ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이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국내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지난 27일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외국인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지 않은 국회의 입법부작위가 위헌이라고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했다. 헌재가 국회의 ‘진정입법부작위’에 대해 위헌을 확인한 것은 1994년 이후 두 번째다.

 

진정입법부작위는 헌법상 입법 의무가 있음에도 국회가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아 법적 공백이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헌재가 이를 직접 위헌으로 판단한 것은 약 32년 만이다.

 

이번 헌법소원은 미등록 체류 상태인 베트남 국적 부모의 자녀가 청구인으로 참여하면서 제기됐다. 2019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 아동은 출생 후 7년이 지나도록 국내에서 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등록하지 못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정돼 있다. 외국인 아동의 경우 부모의 국적국 법령에 따라 본국에서 신고하거나 재외공관을 이용해야 하는데, 부모가 미등록 체류 상태라면 이 같은 절차를 밟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아동은 자신의 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워 의료·보육·교육 등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아동들은 흔히 ‘그림자 아동’으로 불린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는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외국인도 출생지 국가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기록될 권리를 가진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적이나 체류자격, 본국에서의 출생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법에 따라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할 국가의 입법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국내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적이나 체류자격이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출생등록과 국적·체류자격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헌재는 “모든 아동은 자신이 태어날 장소나 국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며 출생지 국가가 아동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외국인 아동을 교육기본법상 의무교육 대상에서 제외한 부분과 외국인의 초·중등학교 입학 과정에서 외국인등록 사실 증명을 요구하는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은 모두 각하했다. 해당 청구가 헌법소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국회의 후속 입법도 관심사다. 22대 국회에서는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안 6건이 발의돼 현재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감사원은 2015~2022년 국내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약 4천 25명으로 추산했다. 연평균 500명이 넘는 규모다.

 

아동 인권단체들은 헌재 결정을 환영했다. 특히 출생등록 없이 살아가는 아동을 국가가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국회가 조속히 관련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제도 마련 과정에서 별도의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법을 제정하기보다 기존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외국인 아동을 포함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또한 미등록 외국인이 자녀의 출생등록을 꺼리지 않도록 출생등록 정보가 체류 단속과 직접 연결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둘러싼 오랜 제도적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국가의 책임이 명확해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회가 관련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가는 것이다. 출생등록이 국적이나 체류자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현실적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논의와 입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