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 = 유용욱 주필 |굳이 거창하게 뭘 인용하지 않더라도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이것은 웅변이나 수사(修辭)가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존립 기반이다. 전장에 투입된 하급 지휘관이 상관의 명령을 받는 순간 법전을 펼쳐 들고 상관의 명령에 대해 위헌성과 위법성을 저울질한 뒤 실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 그 조직을 과연 군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군대가 아니라 로스쿨 동아리 중 하나이거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갈팡질팡하다 적의 총탄에 사분오열할 사조직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는 비록 1심 선고이긴 하지만 군의 이 엄혹한 생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대한민국 국군을 향해 사형을 선고했다.
사법부마저 굴복한 ‘내란 몰이 광풍’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7-2부는 12·3 비상계엄 당시 707특수임무단을 이끌고 국회로 출동했던 김현태 전 단장(대령)에게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내란 특검팀의 징역 18년 구형에 이어 나온 이 엄벌주의 판결은 아무리 느슨한 잣대로 되짚어 보더라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이미 특정 집단이 법원 내 요직 대부분을 장악한 사법부라지만 법원마저 현 정권이 주도하는 거대한 ‘내란 몰이’의 광풍에 가담하여 다분히 정무적 판결을 내렸다는 의구심을 끝내 지우기가 어려운 것은 비단 혼자만의 생각일까.
김현태 전 단장은 출동 명령을 하달받을 당시 국헌문란의 목적이나 출동과 관련한 저간의 사정이나 배경에 대해 어떠한 사전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오직 곽종근 당시 특수전사령관으로부터 단편적 출동 지시를 받아 이를 즉각적이고도 성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이다.
이미 김현태 전 단장 등이 법정 증언을 통해 수차례 밝힌 바와 같이, 김 전 단장은 당시 현장에는 테러에 준하는 위협이 발생했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하급 지휘관으로서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한 군인이다. 그런 군인에게 ‘명령의 위법성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수사적(修辭的) 이유 하나로 무려 징역 12년의 가혹한 옥고(獄苦)를 치르라는 것은 사법(司法)의 이름으로 행해진 또 다른 폭력에 다름 아니다.
부하 버린 사령관과 정치적 폭로, 그 비열한 공작의 끝
김현태 전 단장의 비극적인 사법 구속 뒤편에는 군의 명예와 신의를 저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했던 이들의 음습(陰濕)한 거래 의혹이 짙게 그늘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다.
그는 계엄 사태 직후 군의 최고 수뇌부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야권이 치켜세워 준 '공익제보자'라는 허울 좋은 탈을 썼다. 박선원, 김병주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밀착하여 군 내부의 기밀과 상부 지시 정황을 자의적으로 재가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로성 증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법적으로는 공익신고자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처지이면서도, 부하들에게 책임을 덮어씌워가며 정치적 면죄부를 구걸했던 것이다.
곽 전 사령관은 정권의 부역자 역할을 자처하며 군의 명예를 버리고 부하들을 배신하는 대가로 처벌을 피하려 했으나, 법원은 그에게 역시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정치권에 기생해 부하들에게 책임을 밀어내고 홀로 살아남으려 했던 지휘관의 비열한 정치적 승부수가 그 결국은 참담한 자멸로 끝났음을 증명한 셈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권의 전형적 ‘토사구팽’
어디 이뿐인가. 이어진 수사 결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역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계엄 초기 정치권과 매스컴을 통해 사태의 내막을 제보하고 지시를 거부한 ‘양심적 인물’로 포장되며 거창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권력의 칼춤이 끝난 자리에 남은 것은 역시 ‘불구속 기소’라는 처참한 통보뿐이었다.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에 맞춰 폭로전에 동조하고 협력할 때는 요란하게 이용하다가, 판이 정리되자 깔끔하게 단죄의 대상으로 던져버린 전형적인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비극이다.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조직을 팔고 상관을 들먹였던 자들의 말로(末路)가 이러하다.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대목은 사법부가 군 간부들에게 부과한 궤변적 논리다. 재판부는 "명령의 위법성이 명백함에도 이를 거부하지 않고 맹종(盲從)했다"며 법적 책임을 물었다. 묻고 싶다. 당시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헌법적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가적 비상상황이었다.
군사 작전권의 최하단에 위치한 현장 부대장이 상관과 통수권자의 명령을 받으면서 "이 명령이 위법한지 법률 검토부터 해보겠다"며 이행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군대 구조에서 가능한 일인가?
상급심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안보의 자해(自害) 행위
만약 이번 판결이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심을 거쳐 최종 판례로 확정된다면,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체계는 그날로 철저하고도 완전한 붕괴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향후 안보 관련 어떠한 유사시나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전면전 상황에서도 하급 지휘관들은 상부의 작전 명령을 곧바로 이행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아니, 이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작전 명령서가 내려오면 일단 법무관을 불러 해당 작전 명령의 법률적 위험성을 검토하고, 자신에게 돌아올 사법적 후폭풍을 계산하느라 골든타임을 모두 놓쳐버릴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명령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라는 사명감으로 유지되어 온 국가 안보의 보루(堡壘)가 사법부의 현실 모르는 잣대 때문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셈이다. 정치적 풍향계에 맞춰 군인을 내란범으로 내몰고, 자기 생존을 위해 부하와 조직을 밀고한 자들을 부추겨가며 벌인 이 광란(狂亂)의 사정극(査正劇)은 대한민국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았다.
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명령에 따라 묵묵히 헌신해 온 참군인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자들은 도리어 정의를 논하며 군 조직과 군인들을 대상으로 기만(欺瞞)을 일삼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군과 군인의 정의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국가 안보의 보루인 군대를 무너뜨리고 얻을 수 있는 정의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군대가 무너지면 나라의 존립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추후 상고심을 통해 이 비정상적인 사법 폭력을 스스로 바로잡고, 명령에 충직했던 참군인의 명예와 국군의 존엄을 되찾아주지 않는다면, 훗날 역사는 이번 판결을 ‘정의의 승리’가 아닌 사법의 탈을 쓰고 대한민국 안보에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린 참혹한 자멸의 기록으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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