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이서호 기자 | 중국 배터리 업체와의 경쟁에서 고전하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국 전기차 시장 위축과 유럽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미국의 탈중국 정책이 국내 업체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27일 ‘K-배터리, 위기인가 전환기인가: ESS를 중심으로 본 새로운 성장축의 모색’ 보고서를 발간하며 국내 배터리 산업이 미국 ESS 시장을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최근 국내 배터리 산업이 미국 전기차(EV) 시장 위축과 삼원계(NCM) 배터리의 경쟁력 악화가 동시에 맞물리면서 부진을 겪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전기차 시장을 겨냥해 투자를 늘려왔다. 지만 지난해 들어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면 미국 전기차 시장 위축됐고,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도 악화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 -31%, 올해 1분기 -23%로, 두 분기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판매가 늘고 있는 유럽 시장에서도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한국의 유럽 시장점유율은 2023년 55%에서 지난해 35%로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42%에서 61%로 증가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시장 수요를 흡수하면서 한국 업체들의 주력 제품인 NCM 배터리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 NCM 배터리는 LFP 배터리보다 비싼 광물을 사용해 제조 원가가 높고, 이는 완성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산업연구원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 ESS 시장을 국내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제시했다.
미국 ESS 시장은 지난 2023년 55기가와트시(GWh)에서 연평균 16% 성장해 2035년에 320GWh에 이를 것으로 전해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무정전전원장치(UPS) 시장은 연평균 47%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이며 오는 2035년 135GWh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이 중국 업체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에게는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에 추가 관세를 매기고 공급망 규제를 강화하는 등 탈중국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국내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산업연구원은 국내 배터리 업계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국내 배터리 업계가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 성공하면 중장기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미국 공급망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 소재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정부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전략분석실장은 “최근 발표된 국내생산세액공제 지원 범위에 배터리 분야가 포함됐다”며 “중국 업체 대비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면 세액공제에 직접환급과 제3자 양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세부 지침이 확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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