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독감 걸린 채 출근하다 숨진 유치원 교사, 사망 115일 만에 직무상 재해 인정

인싸잇=이다현 기자 | B형 독감 확진 판정을 받은 뒤에도 출근을 이어가다 숨진 경기 부천의 사립유치원 20대 교사가 사망 115일 만에 직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아파도 쉬기 어려운 사립유치원의 구조적 환경이 교사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재심의서 가결... 지난달 보류 후 뒤집어

 

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따르면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사학연금공단)은 이날 급여심의회를 열고 교사 A씨의 유족이 청구한 직무상 유족급여 심의를 가결했다. 지난달 첫 심의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보류 결정을 내렸던 안건을 재심의 끝에 뒤집은 것이다.

 

사학연금공단의 인정은 A씨가 근무한 유치원의 집단 감염 실태와 병가 사용의 어려움이 핵심 근거가 됐다.

 

유족 측은 지난해 10월부터 A씨가 사망한 올해 2월까지 전체 원아 120명 가운데 43명과 교사 2명 등 총 45명이 독감에 걸렸다는 통계와 함께 “병가 사용이 꺼려진다”는 동료 교사들의 진술을 사학연금공단에 제출했다.

 

B형 독감 확진에도 사흘 출근... 체온 39.8도에 조퇴, 다음 날 중환자실

 

A씨의 사망 경위는 이렇다. A씨는 1월 말 발표회 준비로 주말까지 근무하면서 고열을 동반한 독감 증세가 시작됐다. 1월 27일 B형 독감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1월 30일까지 사흘간 출근을 이어갔다.

 

 

독감 확진 직후 A씨는 원장에게 “몸 관리를 더 신경써야 했는데 죄송하다. 내일 마스크 쓰고 출근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원장은 “네 ㅠㅠ”라고만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부모가 출근을 말렸지만 “나오지 말라고 안 하는데 어떻게 출근을 안 하겠냐”며 일을 하러 갔다.

 

업무 도중 체온이 39.8도까지 치솟자 조퇴했고, 다음 날 새벽 응급실로 이송됐다. 1월 31일부터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2월 14일 끝내 숨졌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구조”... 사립유치원 교원 열악한 근무 환경

 

이번 사건은 사립유치원 교사들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대체 인력이 부족해 병가를 내면 동료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넘어가는 구조, 퇴근 이후 이어지는 키즈노트 알림장 작성·학부모 상담 전화·방과후 수업 등 추가 무급 업무, 1년 단위 단기 계약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이 맞물려 교사들이 아파도 병가를 내지 못하는 환경이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코미디언 이수지가 유치원 교사의 고충을 패러디한 영상이 게시 이틀 만에 조회수 214만 회를 넘기며 “현실 고증”이라는 반응이 쏟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교조는 8일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며 “독감에 걸린 상태에서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교육 현장을 지키다 숨진 교사의 죽음이 노동 환경과 직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였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교조는 ▲감염병 발생 시 교원 병가 사용권 실질 보장 ▲학급 수 중심 교원 정원 산정 기준 개선 ▲실효성 있는 대체 인력 체계 구축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도 9일 성명을 내고 “너무 늦게 내려진 당연한 결정”이라며 “산업재해 인정 범위가 물리적 사고 중심에서 직무 스트레스·과로·감염병 노출 등 업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질병과 사망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반영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원장, 중환자실 치료 중인 날짜로 사직서 위조... 검찰 송치

 

사건의 또 다른 축은 사직서 위조다. 부천원미경찰서는 지난달 22일 유치원 원장 B씨를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A씨가 숨지기 나흘 전인 2월 10일 자로 사직서를 위조해 부천교육지원청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A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으로 사직서를 작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유족은 A씨가 이미 퇴직 처리된 사실을 사학연금공단에 사망 조위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됐다. 유족의 의혹 제기 후 부천교육지원청이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4월 2일 유치원을 압수수색해 근무기록부 등 서류를 확보했다.

 

경찰 조사에서 B씨는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 일부를 시인했다. 다만 경찰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판례와 법리상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불송치로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