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이서호 기자 | 인공지능(AI) 열풍이 지속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수혜 기대감이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넘어 AI용 반도체 기판 시장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해당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두 회사의 성장세가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목표주가를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최근 기판이 주목받는 이유는 반도체 성능 고도화에 있다. AI가 발전하면서 데이터 처리량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기판은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다. 기존에 사용되던 기판보다 신호 손실을 줄일 수 있어 많은 데이터를 단기간에 전송할 수 있다.
FC-BGA는 AI 서버와 AI 가속기 시장이 확대되면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AI 반도체 칩의 크기가 커지면서 이를 안정적으로 장착할 수 있는 대면적 기판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고성능 연산을 위해 여러 칩을 하나의 기판 위에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확산되면서 FC-BGA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AMD, 구글 등 여러 빅테크 기업들은 자체 AI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FC-BGA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당 기판의 공급 부족 현상이 시작되면서 이 사업을 확장 중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주목받는 분위기다.
FC-BGA 수요 폭증에 공장 풀가동... 실적 개선으로 연결
두 회사는 지난 2022년 FC-BGA 양산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기판 공급 부족 상황이 전망되자, 삼성전기는 베트남에 12억 달러(약 1조 8264억 원)를 투자해 대규모 FC-BGA 공장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LG이노텍도 베트남 하이퐁 공장 증설에 1조 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대규모 투자와 함께 양사는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KPCA Show 2025’에서 대면적 FC-BGA와 실리콘 인터포저 없이 반도체를 직접 연결하는 2.1D 패키지기판 기술 등을 공개했다. LG이노텍도 지난달 ‘2026 ECTC’에 참가해 대면적 FC-BGA 기판 샘플 2종을 선보였다.
생산 라인도 풀가동 상태에 가깝게 돌아가고 있다. 삼성전기의 지난 1분기 반도체 기판 생산라인의 평균 가동률은 80% 이상이었다. 같은 기간 LG이노텍의 반도체 제조 설비 가동률은 91.8%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삼성전기의 반도체 기판 사업을 담당하는 패키지솔루션사업부의 지난 1분기 매출은 7250억 원이며, 영업이익은 553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45.2%, 103.3% 증가한 수준이다.
LG이노텍도 마찬가지로 실적이 크게 올랐다. 회사의 패키지솔루션사업부 1분기 매출은 437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251억 원에서 2953억 원으로, 136% 상승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FC-BGA로 실적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은 차세대 소재를 사용하는 유리기판으로 향하고 있다.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 소재 기판보다 표면이 평평해 미세회로 작업이 가능하며 열 변형이 적어 신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유리기판은 초고성능 AI 반도체 기판에 적합한 차세대 기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두 회사는 유리기판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삼성전기는 국내 첨단 반도체 소재 기업인 JWMT,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협업하는 등 유리기판 개발에 힘을 주고 있다. 회사의 유리기판 목표 양산 시기는 2027년이다.
LG이노텍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지난 1월 ‘CES 2026’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판 기술인 유리기판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며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손잡고 2028년 시제품 양산을 목표로 개발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유리기판 선점 기대감에 증권사 목표주가↑
이러한 실적 호조와 차세대 기판 시장 선점 기대감이 맞물리자, 두 회사의 주가는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9일 유가증권시장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기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8.39% 상승한 197만 원에 거래를 마쳤다. LG이노텍은 113만 7000원에 장을 마감하며 전 거래일보다 3.84% 올랐다.
지난달 4일 시가부터 이달 9일 종가까지의 주가 상승률도 두드러진다. 삼성전기의 주가는 85만 9000원에서 197만 원으로, 129.3% 뛰었다. 같은 기간 LG이노텍의 주가는 58만 9000원에서 113만 7000원으로 93% 상승했다.
증권가에서는 두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목표주가를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9일 유안타증권은 삼성전기의 목표주가를 220만 원으로 높였고, iM증권은 기존 180만 원에서 230만 원으로 상향했다.
고의영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는 다중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FC-BGA에서 동시에 수혜를 누릴 수 있는 AI 컴포넌트 대장주”라며 “추가 가격 인상과 실리콘 커패시터 수주 확대를 통해 앞으로도 이익 추정치 상향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같은 날 유안타증권은 LG이노텍의 목표가를 기존 85만 원에서 55만 원 높인 14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KB증권은 지난 5일 증권사 중 최고 목표가인 200만 원을 제시했다.
KB증권은 AI 기판 산업의 구조적 공급 부족으로 패키지솔루션 사업의 장기 실적 가시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대형 고객사들이 설비 투자 지원과 장기공급계약 등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수요가 단기 주문을 넘어 장기 생산능력 확보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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