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準)공적 권력이 된 여론조사의 오만(傲慢), 왜 책임(責任)은 묻지 않는가

6·3 선거가 드러낸 출구·예측조사의 붕괴와 언론·제도의 공동 실패

인싸잇=유용욱 주필 | 선거는 끝났지만,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중대한 문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개표 결과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선거 당일 오후 6시, ‘과학’이라는 권위를 두른 채 전파를 탔던 수많은 출구조사와 그 이름조차 생소한 예측조사였다.

 

 

그 숫자들은 최종 개표 결과와 어긋난 정도를 넘어, 민심의 방향 자체를 거꾸로 가리켰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실패나 일시적 착오가 아니다. 한국의 여론조사와 선거보도가 오랫동안 누적해 온 구조적 결함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우연(偶然)을 넘어선 체계적 오류(誤謬)와 '남 탓' 퍼레이드(parade)

 

서울을 비롯한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 대구와 경남, 그리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드러난 예측 실패는 예외(例外)가 아니라 패턴에 가까웠다. 문제는 몇 퍼센트포인트의 오차가 아니다. 승패의 방향 자체를 잘못 예측한 사례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통계학에서 오류(誤謬)는 무작위(無作爲)로 발생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번 출구조사들과 예측조사는 이상하게 유독 특정 정치 성향의 후보를 과대평가하고, 다른 쪽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는 방향성을 보였다. 이는 우연의 범주를 벗어난다. 조사 설계, 표본 구성, 응답 수집, 가중치 보정 과정 중 어딘가에 구조적인 왜곡(歪曲)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방송사와 조사기관이 내놓은 해명은 익숙하다. 사전투표율이 높았다는 이유, 응답을 회피하는 ‘샤이(shy) 유권자’ 현상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사전투표 제도는 도입된 지 이미 10년이 넘었고, 전체 투표의 30~40%를 차지하는 것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상수(常數)다.

 

상수를 통제하지 못한 채 매번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이 아니라 무능(無能)이다.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각종 조사가 선거가 끝난 뒤마다 “정치 환경이 달라졌다”는 고장 난 녹음기 같은 변명으로 귀결(歸結)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신뢰를 국민에게 요구할 명분은 이제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민심에 개입한 '여론의 공해’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조사 결과 공표가 미친 실질적 영향이다. 이번 선거 당시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 종료 시각을 넘겨 투표가 이어진 지역이 적지 않았다. 기표소 안에 있거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유권자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누가 앞설 것으로 예측된다’는 출구조사 결과는 물론, 투표를 위해 기다리는 중에도 예측조사 결과를 통해 ‘어느 정당이 앞서고 있다’는 속보를 접하는 장면이 현실이 됐다.

 

민심을 전달한다던 정보가, 마지막 순간 민심에 개입하는 신호로 작동한 것이다. 결국 출구조사나 예측조사가 공론(公論)의 도구가 아니라 여론(輿論)의 공해(公害)로 전락하는 순간이며 이는 결국 언론의 무분별한 선거보도 속도 경쟁이 주권자의 판단보다 앞서버린 결과다.

 

이 지점에서 문제의 핵심은 언론의 윤리적 태도를 넘어 제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오늘날 여론조사와 예측조사, 그리고 출구조사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다. 각종 선출직 공직후보자의 선거 전략을 바꾸고, 각급 언론의 프레임을 만들며, 유권자의 인식을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준(準)공적 권력이다. 그러나 그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책임을 묻는 장치는 놀라울 정도로 허술하다.

 

'6개월 면죄부' 뒤에 숨은 부실(不實)과 방조(幇助)

 

현행 제도에서는 선거가 끝난 뒤 6개월만 지나면 여론조사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표본 설계, 질문지, 원자료는 그 시점 이후 적법하게 폐기된다. 왜곡이 있었는지, 특정 정파에 유리하도록 설계됐는지, 의도적 편향이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책임은 짧고, 검증은 차단돼 있다.

 

아무리 큰 오류를 남긴 조사 결과도 또 그런 조사를 실행하고 공표한 여론조사 기관도 “6개월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 가능한 구조다. 민의(民意)를 왜곡할 수 있는 행위가 일상적 범죄보다 가벼운 취급을 받는 셈이다.

 

정치권 역시 이 구조를 방치해 왔다. 여론조사는 어느 진영이든 유리할 때는 적극 활용하고, 불리할 때만 문제 삼는 도구다. 그러니 원자료(raw-data) 장기 보존이나 공소시효 연장 같은 최소한의 개혁조차 논의 끝에 번번이 미뤄졌다. 그 이유와 원인은 사안(事案)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지기 싫어서다. 그 결과 공적 정보를 다루는 영역에서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사실상 실종됐다.

 

검증 없는 숫자는 정보가 아니라 공해(公害)이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민심을 ‘예측하는’ 시스템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예측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그래픽이나 새로운 통계 기법이 아니라, 예측이 실패했을 때 설명할 수 있고,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구조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이번 선거 과정에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그리고 예측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사에 사용된 원자료, 표본 추출 방식, 가중치 보정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사후 공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실패의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다음 선거로 넘어가는 관행은 국민적 신뢰를 갉아먹을 뿐이다. 둘째, 여론조사 자료의 보존 기한과 책임을 묻는 공소시효를 현실에 맞게 대폭 연장해야 한다. 검증이 불가능한 영역에 이처럼 강한 공공성을 더이상 부여할 수는 없다. 셋째, 사전투표 표심을 합법적이고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는 법적·기술적 제도 보완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언론의 권위는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비로소 그 권위와 신뢰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 참담하게 빗나간 예측을 남긴 뒤에도 침묵하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일관한다면, 출구조사나 예측조사는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공해에 불과하다. 검증 불가능한 숫자는 민심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현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예측은 결국 언젠가는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공적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 이번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