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강인준 기자 | 연상호 감독의 영화 ‘군체’가 지난달 21일 날 개봉해 개봉 14일 째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작품을 단순한 좀비영화로만 볼 수는 없다는 평이 나온다. ‘군체’의 감염자들은 기존 좀비영화의 감염자들과 다르다. 이들은 무작정 달려드는 죽은 자의 무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반응하며 하나의 의지처럼 움직이는 존재다. 개별적 판단은 사라지고, 집단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군체’는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흥미로운 접점을 만든다. ‘에반게리온’에서 인간은 각자의 마음을 둘러싼 경계, 즉 AT 필드를 가지고 있다. AT 필드는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벽이자, 인간이 서로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게 만드는 거리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개별자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 역시 이 같은 해석을 피하지 않았다. 시사회 당시 ‘군체’를 두고 ‘좀비영화와 에반게리온을 합친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자, 연 감독은 그 해석이 작품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는 ‘군체’가 단순히 좀비의 속도와 물량을 앞세운 장르영화가 아니라, 개별성이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의 의지로 수렴되는 상태를 공포로 바라보는 작품임을 보여준다.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은 이 AT 필드를 제거해 모든 인간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외로움과 상처를 없애는 구원처럼 보인다. 서로 오해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완전히 하나가 되는 세계. 그러나 작품은 그 상태를 낙원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의 욕망, 기억, 고통, 선택이 모두 녹아 사라지는 세계다. 더 이상 갈등은 없지만, 동시에 더 이상 ‘나’도 없다.
‘군체’가 보여주는 감염자들의 모습도 이와 닮아 있다. 감염자들은 강하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망설이지 않는다. 서로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개별성이 없다. 각자의 사연도, 판단도, 윤리도 사라진다. 다수가 하나가 되는 순간, 그 집단은 강해지지만 인간적이지는 않다.
이 점에서 ‘군체’의 공포는 좀비의 외형이 아니라 집단화의 방식에서 나온다. 전통적인 좀비영화에서 좀비는 대개 문명 붕괴의 상징이었다.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이 생존 본능만 남은 상태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그러나 ‘군체’의 좀비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무질서가 아니라 지나친 질서에 가깝다. 제각각 흩어진 혼란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는 질서가 공포가 된다.
‘에반게리온’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과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정말 구원인가. 작품은 끝내 그 질문에 회의적으로 답한다. 인간은 상처받더라도 타인과 분리된 존재로 남아야 한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롭지만, 바로 그 불완전한 거리 속에서 관계가 가능해진다.
‘군체’의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모습도 그렇다. 이들은 감염자들처럼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서로 의심하고, 다투고, 실수하고, 때로는 비겁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은 하나의 의지로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두려움과 욕망을 가진 개별자다. ‘군체’는 이 비효율적이고 불완전한 개별성이야말로 인간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 모두 ‘하나 됨’의 유혹을 비판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종종 하나의 집단, 하나의 여론, 하나의 알고리즘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분노를 공유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개인의 판단은 쉽게 사라진다. 그 상태는 편하다. 외롭지 않고, 책임도 분산된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때로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에반게리온’의 AT 필드는 단순한 마음의 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경계다. 타인과 완전히 합쳐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지만, 동시에 나 자신일 수 있다. ‘군체’의 감염자들이 무서운 이유도 이 경계가 사라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덩어리’다.
그래서 ‘군체’는 좀비영화이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개인이 집단 속에 흡수되는 시대, 개별적 판단보다 다수의 흐름이 더 강력해지는 시대, 연결이 자유가 아니라 통제가 될 수 있는 시대의 공포가 영화 안에 담겨 있다. ‘에반게리온’이 인간 내면의 외로움과 타자와의 거리 문제를 철학적으로 파고들었다면, ‘군체’는 그것을 장르영화로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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