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예

‘21세기 대군 부인’ 논란이 소환한 ‘박해영’표 드라마

인싸잇=전혜조 기자 | 폐지 청원까지 등장한 ‘21세기 대군 부인’ 논란은 단순한 호불호를 넘어 최근 드라마 소비 흐름 자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공개 전부터 스타 캐스팅과 화려한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방영 이후에는 “몰입이 어렵다”, “대사가 비현실적이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폐지 청원 이야기까지 나오며 작품을 둘러싼 피로감도 커졌다.

 

모든 드라마가 현실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와 로맨스에는 애초에 현실과 다른 설정이 필요하다. 다만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지점은 비현실적인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인물의 말과 감정이 납득되지 않을 때다. 아무리 세계관이 화려하고 영상미가 뛰어나도 대사와 감정이 어색하면 시청자는 이야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 시장은 점점 더 강한 자극 경쟁으로 흘러왔다. 재벌 설정, 복수극, 극단적 관계, 빠른 전개, 숏폼용 장면과 대사들이 반복되면서 공개 직후 SNS 화제성은 커졌지만, 반대로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는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드라마가 ‘정주행 콘텐츠’이기보다 ‘클립 소비 콘텐츠’처럼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여기서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시 언급되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다. 두 작품 모두 큰 사건이나 자극적 설정보다, 평범한 인간의 무력감과 외로움, 말하지 못한 감정을 현실적인 대사로 풀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에도 “드라마라기보다 실제 사람들 대화를 듣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박해영 작가 작품들은 화려한 사건보다 ‘버티는 인간’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누군가는 가족 관계에서, 또 누군가는 자기 자신 안에서 무너져가는 감정을 조용히 끌고 간다. 그 과정에서 튀는 명대사를 만들기보다 현실 속에서 정말 누군가 한 번쯤 했을 법한 말들을 남긴다. 오히려 그 점이 시청자들에게 오래 남았다.

 

 

최근 완결된 박해영 작가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전작들과 함께 비교됐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가 그랬듯, 이 작품 역시 화려한 사건보다 인간 내면의 결핍과 불안,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웠다.

 

평가가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둘러싼 반응의 중심에는 다시 ‘대사’가 있었다. 박해영 드라마가 계속 소환되는 이유는 강한 설정이 아니라, 시청자가 자기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문장을 남기기 때문이다.

 

화려한 설정과 빠른 전개는 시선을 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르는 장면은 대개 인물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에 남아 있다. ‘21세기 대군 부인’ 논란 속에서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가 다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