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사전투표와 ‘견제(牽制)의 미학(美學)’

인싸잇=유용욱 주필 | 오늘부터 지방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 있다. “투표해도 달라질 게 없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냉소와 체념(諦念)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체념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참여하지 않는 시민의 몫까지 정치가 스스로 절제해 주리라는 기대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투표는 권력을 통제하는 최소한의 장치

 

투표는 결과를 바꾸는 행위이기 이전에, 권력을 통제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이 유권자 앞에서 긴장감을 느끼느냐다. 그 긴장감이 사라질 때 정치는 민심보다 자기 논리에 충실해지고, 국민보다 진영(陣營)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그런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 성격은 단순한 ‘지역 일꾼 선출’에 머물지 않는다. 정권 초기의 국정 운영 방식 전반에 대한 첫 번째 중간 평가이자, 민심의 향방을 가를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개 유세에 나선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탄핵(彈劾)과 사면(赦免)이라는 헌정사의 거대한 굴곡을 몸소 겪은 전직 대통령이 다시 거리에서 투표를 호소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것은 특정 진영에 대한 지지를 넘어, “정치는 결국 투표로 말하는 것이며, 그 어떤 정치적 비극과 갈등도 유권자의 선택을 통해서만 치유되고 전진할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다.

 

민생의 고통은 여전, 정치권은 진영 대결에 매몰(埋沒)

 

그러나 권력의 교체와 격변 속에서도 여야 각 정당이 국민 앞에서 충분한 성찰이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생의 고통은 날로 깊어지는데, 정치권의 언어는 여전히 과거의 진영 대결과 네거티브에 머물러 있다.

 

현직 대통령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와 이로 인한 당 내외의 갈등, 그리고 강경 지지층에만 기대는 극단의 정치가 과연 지방 행정과 지역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방 권력은 결코 작은 권력이 아니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은 예산과 인사, 개발과 복지의 실질적 결정권을 쥐고 있다. 지방의회 역시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닌다. 이 권력이 특정 정치 세력에 과도하게 독점될 때,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견제’와 ‘균형’은 구호로만 남게 된다.

 

정치구조 정상화의 시작은 ‘견제와 균형’ 원리의 회복에서

 

이런 이유에서 이번 사전투표는 권력을 나누고 상호 경쟁시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정당도, 흠 없는 후보도 없다. 그렇기에 유권자의 현명한 표심은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일방 독주를 막고 정치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치열한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

 

사전투표 제도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급적 많은 유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최소한의 배려다. 단 하루, 혹은 단 몇 분의 투표 시간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면,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가치 역시 그만큼 가벼워질 뿐이다. 투표하지 않은 시민은 정치에 분노할 권리도, 실망할 자격도 스스로 내려놓는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현상 유지에 대한 방조(幇助)다. 투표하지 않는 다수의 공백은 언제나 왜곡된 소수의 선택으로 채워져 왔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뒤늦게 후회하는 장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투표소로 향하는 유권자의 발걸음이다. 오늘의 한 표가 내일의 정치 문화를 결정하고 우리 동네의 미래를 바꾼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결과를 탓할 수는 없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