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 의료기사법 ‘졸속 심사’ 논란… 의협·치협 “환자 안전 흔드는 법안”

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의료기사 업무 근거를 의사·치과의사의 ‘지도’에서 ‘처방·의뢰’까지 넓히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가 “환자 안전과 의료 면허체계를 흔드는 법안”이라며 국회 앞에서 집단 반발에 나섰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이목이 선거전에 쏠린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예정에 없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급히 논의되고 있다며 졸속 심사 중단과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19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기사법 개정 결사 저지’ 전국 의사·치과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의협 집행부, 이정우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직무대행과 치협 집행부, 각 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의료계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이날 오후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을 두고 환자 안전과 의료 면허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며 법안 처리 중단을 요구했다. 참석자들은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의사의 직접적 지도 원칙을 약화시키고, 의료기관 밖에서 이뤄지는 의료기사 업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는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이정우 회장직무대행의 대회사, 황규석 대한의사협회 부회장과 이창주 대한치과의사협회 지부장협의회 회장의 투쟁사, 최정섭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과 신동열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회장의 연대사 등으로 진행됐다.


김택우 회장은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예정에 없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급히 다뤄지고 있다며 졸속 심사 문제를 제기했다. 김 회장은 “의료기사단체는 돌봄통합 및 방문재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법안 통과를 압박하고 있고 이러한 의료기사단체의 압박으로 국회도 본 개정안만을 심사하기 위해 당초 예정에도 없던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이례적으로 오늘 오후 2시 급하게 개최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도’ 대신 ‘처방·의뢰’… 의료계 “환자 안전 공백”


논란이 된 개정안은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 근거를 현행 의사·치과의사의 ‘지도’에서 ‘지도 또는 처방·의뢰’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의료기사법은 의료기사를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의료기사에는 임상병리사·방사선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치과기공사·치과위생사 등이 포함된다.


개정안 추진 측은 고령화와 지역사회 통합돌봄 확대 흐름에 맞춰 의료기사 업무 수행 근거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사의 처방이나 의뢰에 따라 방문재활, 구강관리, 검사 등 관련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등의 의료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의협과 치협은 의료행위가 환자 상태 변화와 위험 판단, 응급 대응이 함께 이뤄지는 영역인 만큼 의사의 진단과 지속적 관리 아래 수행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료는 단순히 처방 한 장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라며 “환자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위험을 다시 평가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안전한 의료시스템”이라고 했다. 이어 “처방 중심으로 방문재활 체계가 바뀔 경우 겉으로는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환자 안전에 대한 공백이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정우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직무대행은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치과계를 포함한 보건의료 전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기사법 개정은 명백히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대한민국 의료수준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사 업무가 의사·치과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의뢰’만으로도 가능해진다면 예측 불가능한 의료기사의 독단적인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며 “부실 진료를 양산하게 되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경고했다.


“밥그릇 싸움 아냐”… 면허·책임 체계 우려


의료계가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쟁점은 책임 공백이다. 의협은 의료기관 외부에서 의료기사가 처방·의뢰를 근거로 업무를 수행하다 환자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고가 발생할 경우, 처방을 낸 의사와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한 의료기사, 소속 의료기관 사이의 책임 관계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황규석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이번 논란을 직역 갈등이 아니라 의료체계의 원칙 문제로 규정했다. 황 부회장은 “우리는 지금 단순한 법안 하나를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의료의 마지막 원칙과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의 본질은 의료행위의 근간인 의사의 지도·감독 체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이것은 의사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고 강조했다.

 


이창주 대한치과의사협회 지부장협의회 회장은 면허 체계와 책임 구조의 붕괴 가능성을 지적했다. 그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흔들겠다는 무책임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면허 체계를 흔드는 순간 의료의 책임 체계도 무너진다”며 “책임이 무너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밝혔다.


의료기사 단독 업무·개원 가능성도 쟁점

 

 

최정섭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장은 의료기사의 단독 업무 수행과 단독 개원 가능성을 문제 삼았다. 최 회장은 “의료기사의 단독 개원을 허용할 소지가 있는 조항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며 “지역사회 돌봄통합사업에는 반드시 의료기관에 고용된 의료기사만이 의사의 지도에 따라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번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일부 조항은 자칫 의료기사의 단독진료 공간 개설이나 사실상의 단독 개원을 허용하는 우회로로 악용될 수 있다”며 “현행 의료법 및 의료기사법의 대원칙인 ‘의사의 지도’를 벗어나 의료기사의 단독 업무 수행을 조장하는 어떠한 법안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방문재활 명분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최 회장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돌봄통합사업의 특성상 당장 방문재활이 시행되는 것도 아니고 이에 관한 논의가 정부 및 의료 관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진행 중”이라며 “국회는 보건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직시하고 의료기사 단독 개원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법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협 “치과 진료, 출혈·감염 위험 고려해야”


치협은 이번 개정안이 물리치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 등 치과 관련 의료기사 직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치과 진료는 환자의 구강 상태와 전신 건강, 감염 위험, 시술 과정의 안전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영역이다. 치협은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의 업무 역시 치과의사의 진단과 지도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동열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회장은 치과 진료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신 회장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단순히 문구 몇 개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라며 “지난 75년간 우리 보건의료를 지탱해 온 ‘면허 체계’라는 둑에 치명적인 구멍을 내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인의 실시간 지도를 없애고 처방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며 “그것은 환자가 위급한 순간에 의사가 곁에 없어도 된다는 뜻이고, 사고가 나도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유령 의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치과 의료는 작은 시술 하나에도 출혈과 감염, 전신질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했다.
 

 

아래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19일 발표한 의료기사법 개정안 즉각 철회를 위한 결의문이다.


 

[결의문 전문]

의료기사법 개정안 즉각 철회를 위한 결의문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는 지금 붕괴의 전조 앞에 직면해 있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국회가 전문가단체의 경고를 무시한 채, 의료체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졸속 입법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는 이 순간에, 우리 의사와 치과의사들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근간을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 간 쌓아온 의료법령 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무책임한 입법 폭주에 맞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의료계가 제시한 합리적 대안을 경청하고 졸속 심사를 즉각 중단하라!
정부 로드맵상 방문재활 도입은 2028~2029년으로 당장 법 개정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국회는 의료기사단체의 압박에 밀려 당초 예정에 없던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기습적으로 개최하며 졸속 심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의료계는 ‘지도’의 공간적 범위를 넓히는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합리적 대안을 제시했다. 전문가의 소신과 대안을 묵살한 채 의료기사단체의 압박에 굴복하여 일방적으로 개최하는 소위원회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하나, 국회는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
현행 의사 및 치과의사의 ‘지도’를 ‘처방·의뢰’로 바꾸는 것은 면허체계의 원칙을 망각한 위험한 시도다. 의사와 치과의사의 직접적인 지도⋅감독이 배제되면 의료기사의 임의적 업무 수행으로 인해 진료 중 환자 상태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처 및 의료행위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심각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전문가 양심으로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결사 항쟁할 것이다.


하나, 책임 구조를 무너뜨리는 반의료적 입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관여가 불가능한 원외에서 의료기사가 단독으로 업무를 수행하다 사고가 나면 그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져 큰 혼란이 야기된다. 이처럼 책임 구조를 해체하는 개정안은 결국 행정적 부담, 법적 분쟁의 남발, 비용적 낭비로 이어져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다. 만약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한다면, 우리는 해당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하나, 보건의료 면허 체계를 무너뜨리는 직역 침탈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이번 개정안은 의사 및 치과의사의 감독 책임을 약화시켜 추후 의료기사가 의료행위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나아가 독자적 개원이 가능하도록 업무 범위를 확장하려는 근거를 마련하는 꼼수다. 이 법이 적용되면 국가 면허 질서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보건의료 질서를 무너뜨리는 왜곡된 입법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우리의 정당한 경고를 끝내 외면한다면 의사와 치과의사 전체의 단호한 의지를 모아 전면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다!
우리는 국민 편의와 지역 돌봄 체계의 안정적 안착을 위해 의료 전문가로서 진정성 있게 협력해 왔다. 그러나 면허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 건강권을 위협하는 이번 입법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만약 국회가 현장의 우려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우리는 보건의료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을 기점으로 올바른 의료 정의를 확립하고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엄정하게 대응할 것을 강력히 결의한다!

 


2026년 5월 19일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