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이다현 기자 ㅣ 첫날 아주 긴 하루를 보낸 우리는 다음 날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멀리 나가기는 번거롭고 시간도 아낄 겸, 아침은 숙소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평소에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 기자는 계란·브로콜리·닭가슴살 조합의 건강식 컵을 골랐고, 친구는 웨지감자와 오니기리로 끼니를 때웠다.
일본 편의점의 간편식 코너는 올 때마다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야키소바, 그라탕, 오니기리, 파스타, 돈부리, 가쓰동까지. 편의점 하나만으로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 체류 기간 동안 여러 지점의 편의점에 방문했는데, 계산대에는 주로 외국인 아르바이트생들이 많았다. 친구 말로는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꽤 많다고 한다. 다들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해 적잖이 놀랐다.
도쿄역에서 한정판 도쿄바나나 사냥
아침을 해결하고 디즈니씨로 향하기 전, 도쿄역에 먼저 들렀다. 도쿄역에서만 판매한다는 크림브륄레 도쿄바나나를 사기 위해서였다. 평소에 지나치게 단 디저트는 잘 먹지 못하는 편인데, ‘여기서만 살 수 있다’는 말 앞에서는 구매 욕구를 참기가 어렵다. 일단 지인들 선물용으로라도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판매처를 찾아 역 안을 헤맸다. 도쿄역 안에는 산리오 샵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일본 과자를 모아 파는 기념품 코너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들 선물을 모조리 싹쓸이하고 싶었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가장 알짜배기만 골라 담는 전략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크림브륄레 도쿄바나나를 드디어 발견하고 두 박스 집어 들었다. 카라멜이 들어간 속 재료가 제대로 된 당 충전을 안겨줬다. 평소 달콤한 것을 좋아한다면 적극 추천한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도쿄역사 앞에서 우정여행을 온 것 같아 보이는 일본인 두 명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왔다. 한국인의 명예를 걸고 가로세로 구도를 바꿔가며 정성껏 여러 장을 찍어드렸다. 우리도 사진을 부탁했는데, 결과물을 보고 한참 실소가 나왔다. 도쿄역 앞에 섰다는 사실 자체에만 의의를 두는 각도의 사진이 돌아왔다. 친구와 다음부터는 한국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자는 다짐을 하고, 해당 사진은 개인 소장용으로 간직하기로 했다.
헨나 호텔 마이하마: 공룡이 체크인을 해주는 호텔
디즈니씨 일정에 맞춰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언젠가는 꼭 디즈니 리조트 호텔에 묵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슴에 품고, 오늘은 가성비 숙소로 향했다.
예약한 곳은 헨나 호텔 마이하마 도쿄베이. 디즈니씨에서 셔틀버스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이 호텔은 공룡 테마로 꾸며진 독특한 숙소다. 헨나 호텔은 일본 HTM그룹이 운영하는 로봇·자동화 특화 호텔 브랜드로, 세계 최초로 로봇 직원을 도입해 기네스 세계기록에 오른 이력도 있다.
이곳은 호텔 입구부터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체크인은 리셉션 데스크에 서 있는 공룡 로봇이 담당한다. 터치패널에 예약 정보를 입력하면 방 번호가 영수증처럼 출력된다. 체크인부터 입실까지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않고 완료된다는 것이 이 호텔의 핵심 컨셉이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하 1층 짐 보관소를 포함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실용적이고 재밌었다.
디즈니랜드 vs 디즈니씨, 뭐가 다른가
도쿄 디즈니 리조트에는 두 개의 테마파크가 나란히 있다. 1983년 개장한 디즈니랜드와 2001년 개장한 디즈니씨다. 디즈니랜드가 미키마우스 등 클래식 디즈니 캐릭터와 퍼레이드 중심의 아기자기한 구성이라면, 디즈니씨는 바다와 항해를 테마로 한 어른들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전 세계 디즈니 테마파크 중 바다 컨셉으로 운영되는 곳은 도쿄 디즈니씨가 유일하다. 고대 문명의 해저부터 뉴욕 항구, 아라비안 해안까지 7개의 테마 항구로 구성돼 있으며,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이 많아 놀이기구를 즐기는 성인 방문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우리가 간 5월은 디즈니씨 25주년 기념 행사가 한창이었다. 파크 곳곳이 25주년 굿즈로 가득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고민 없이 코너를 쓸어 담다시피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됐다. 돈 없는 대학생 둘은 굿즈 구경만 실컷 하다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 몇 개만 기념용으로 골라 담고 우리의 진짜 목적인 어트랙션을 향해 출발했다.
도쿄 디즈니 리조트 앱을 다운받으면 ‘디즈니 프리미어 액세스’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돈을 지불하고 대기 없이 원하는 어트랙션에 입장하는 방식이다. 어트랙션 3개 이상 타는 것이 목표였던 우리는 이 서비스를 활용하기로 하고, 첫 번째 목표로 타워 오브 테러를 정했다.
타워 오브 테러는 도쿄 디즈니씨의 아메리칸 워터프런트 구역에 있는 대표 스릴 어트랙션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저주에 걸린 인형 시리키 우툰두와 함께 행방불명된 하이타워 13세라는 호텔 지배인이 있다. 그가 사라진 뒤 폐쇄된 호텔에, 뉴욕시 보존협회가 주최하는 투어의 일환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까지 올라가 본다는 컨셉이다. 대기줄을 기다리는 동안 폐쇄된 호텔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을 만큼 분위기를 잘 살려놨다. 도쿄 디즈니씨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됐는데, 이 스토리 개발에만 약 10억 엔이 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문제는 어트랙션의 본질이었다. 번지드롭류 어트랙션이라는 사전 정보 없이 탔는데, 최상층에 도달하는 순간 창문이 열리며 디즈니씨 전경이 펼쳐지더니 그대로 지하를 향해 추락했다. 놀이기구는 웬만해서 다 잘 타는 편이지만, 유일하게 즐기지 못하는 것이 번지드롭이다. 내릴 때 친구 표정을 보니, 친구도 엄청난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스릴을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하지만, 자이로드롭이 약점이라면 사전에 꼭 확인하고 탑승을 결정하길 바란다.
소어링: 판타스틱 플라이트 - 160분 대기의 벽
타워 오브 테러의 충격에서 채 회복도 못 한 채, 디즈니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트랙션 중 하나라는 ‘소어링: 판타스틱 플라이트’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어트랙션보다 대기 시간 안내판을 먼저 발견했다. 160분. 숫자를 두 번 확인했지만 제대로 본 것이 맞았고, 기나긴 인내의 시간을 기꺼이 감당하기로 마음 먹은 채 대기줄에 입장했다.
소어링은 2019년 개장한 도쿄 디즈니씨 대표 어트랙션이다. 메디테러니언 하버 언덕 위의 ‘판타스틱 플라이트 뮤지엄’을 배경으로, 드림 플라이어라는 비행기형 라이드에 탑승해 전 세계 명소와 대자연을 하늘에서 유영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바람과 향기가 실제로 느껴지는 연출이 더해진다. 롯데월드 플라이벤처와 유사한 기종이지만 도쿄 디즈니씨 오리지널 스토리로 제작됐다. 탑승 후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흘릴 뻔했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문제는 인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성수기에는 대기 시간이 3시간에 달한다는 건 사전 정보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160분이라는 숫자를 눈앞에서 보니 현실감이 달랐다. 소어링을 목표로 한다면 입장 즉시 앱으로 DPA를 예약하거나 오픈런을 각오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다.
디즈니씨의 마지막 목적지는 2024년 새로 개장한 8번째 테마 구역 판타지 스프링스였다. 겨울왕국의 아렌델 마을, 라푼젤, 피터팬을 테마로 한 이 구역은 약 3200억 엔이 투입된 디즈니씨 사상 최대 규모 확장 프로젝트다. 개장 이후 소어링보다도 대기 시간이 길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다.
폐장 직전까지 사람이 빠지지 않았다. 안나와 엘사의 프로즌 저니 어트랙션 대기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아렌델 마을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을 풍경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디즈니씨를 나서면서 친구에게 오늘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다. 친구는 잠깐 고민하더니 “아렌델 마을 구경”이라고 답했다. 정작 학수고대 했던 어트랙션은 타워 오브 테러에서 충격받고, 소어링은 160분 대기에 눌렸는데, 기억에 남는 건 줄도 안 서고 그냥 걸어다닌 마을 골목이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비슷했다. 어트랙션 목표치를 채우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디즈니씨라는 공간 자체를 느긋하게 즐긴 시간이 많지 않았다. 굿즈 구경도 인산인해로 대충 훑고 지나쳤고, 사진도 이동하면서 급하게 몇 장 찍은 게 전부였다. 어트랙션 3개를 탔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2부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은 테마파크에 가면 어느 쪽이 먼저인가. 줄을 서서라도 어트랙션을 최대한 많이 타는 것인지, 아니면 테마파크 자체를 걸어다니고 굿즈샵을 기웃거리고 사진을 남기는 것인지. 정답은 없겠지만, 각자의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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