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가루비, 감자칩 포장을 흑백으로 전환... 호르무즈 봉쇄가 과자 포장지까지 바꿨다

25일 출하분부터 14개 제품 흑백 전환... 7월 신제품 출시도 연기
나프타 전년比 60% 급등·일본 중동산 수입 40% 감소·에틸렌 공장 가동률 역대 최저
이토햄·시세이도도 영향... 한국도 NCC 가동률 55%까지 하락, 정부 긴급 대응

인싸잇=이다현 기자 | 일본 최대 스낵 기업 가루비(Calbee)가 대표 제품인 감자칩을 포함한 14개 제품의 포장지를 흑백으로 전환한다. 미-이란 전쟁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나프타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일상적인 과자 포장지 색깔에까지 지정학적 충격이 미치기 시작했다.

 

 

25일부터 14개 제품 흑백 전환... “제품 공급 안정이 최우선”

 

가루비는 오는 25일 출하분부터 감자칩 ‘가벼운 소금맛’·‘콘소메 펀치’·‘김소금맛’, 새우칩 ‘갓파에비센’ 등 주력 제품 14종의 포장지를 흑백 2색만 사용한 디자인으로 순차 전환한다고 12일(현지시각) 밝혔다.

 

7월 출시 예정이었던 사워크림맛 신제품 출시도 연기하기로 했다.

 

가루비는 “중동 정세 긴장으로 일부 원재료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안정 공급을 최우선으로 하여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관방 대변인 기하라 미노루는 이번 사태에 대해 “공급 부족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정부가 가루비와 직접 면담해 수급 불균형 해소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프타 가격 전년 比 60% 급등... 컬러 잉크 원료가 부족해진 이유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핵심 기초 원료다.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는 물론 인쇄용 잉크의 용제(溶劑)와 수지(樹脂) 성분도 나프타에서 나온다. 특히 컬러 잉크에 필요한 원료 수급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번 포장지 교체의 직접적 원인이다.

 

일본석유화학공업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나프타 수요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며, 그 중 70%가 UAE 등 중동산이다. 호르무즈 봉쇄로 중동산 나프타 수입이 막히면서 일본 내 나프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약 60% 상승했다.

 

지난달 일본의 중동산 나프타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 감소해 2022년 3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에틸렌 생산 설비 3월 가동률은 68.6%로 1996년 1월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이토햄·시세이도도 영향... 일본 식품·화장품 업계 전반으로 확산

 

가루비의 흑백 전환은 일본 식품업계 전반의 움직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요미우리신문은 “인쇄용 잉크 부족의 영향이 다른 식품 제조업체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햄·소시지 제조사 이토햄요네큐홀딩스의 우라타 히로유키 사장은 지난 1일 결산 발표에서 “앞으로는 컬러풀한 패키지가 어려워질 것이다. 흑백 등 단순한 포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 중견 음료 업체는 이달 하순부터 15개 음료 제품의 용기 인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나프타 수급 불안을 이유로 일부 제품의 원료를 석유계에서 식물 유래 소재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국민생활산업·소비자단체연합회(생단련)의 712개 회원 기업 조사에 따르면 70% 이상이 나프타 수급 불안이 지속될 경우 제품 가격 인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제품 용량이나 사양을 재검토하겠다는 기업도 40%에 달했다.

 

한국도 나프타 대란... 국내 NCC 가동률 55%까지 하락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나프타 공급망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나프타 수요의 45%가 수입 의존이며 이 중 절반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이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은 3월 기준 55%까지 떨어졌다.

 

롯데케미칼·LG화학·여천NCC 등 주요 업체들은 가동 축소나 일부 공정 중단에 돌입했으며 일부는 고객사에 불가항력 가능성을 통보했다.

 

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섰다.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 7개 품목에 매점매석 금지 조치를 시행했고, 나프타 수입단가 상승분의 50%를 보조하는 ‘나프타 수급안정지원사업’에 6783억 원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NCC 가동률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대통령 중동 특사단은 카자흐스탄·사우디·오만·카타르 등과 협력해 연말까지 원유 2억 7300만 배럴과 나프타 최대 210만 톤을 확보했다.

 

여천NCC는 이달 들어 가동률을 60%에서 65%로 상향 조정했으며 그리스·알제리·나이지리아·이집트 등으로 공급선을 다변화 중이다. 한국 내 판매 가루비 제품을 생산하는 해태가루비는 허니버터칩 포장을 변경할 계획이 아직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