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김용범 ‘국민배당금’ 제안에 “‘성장 바라는’ 기업 사정 몰이해” 비판 고조

“정치인 자신들의 권력은 남과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기업에는 부를 사회에 환원하라는 발상”

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도 제안을 둘러싸고 미디어상 찬반양론이 나뉘고 있다. 이중 다수는 김 실장의 발상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의 사정에 공감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번 이슈를 통해 김 실장 등 현 정부 고위 인사의 ‘분배 중심’의 경제 인식만 제대로 알게 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용범 실장은 지난 11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며 “그렇다면 그 과실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 환원돼야 한다”며 ‘국민배당금’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AI 인프라를 공급하는 나라를 넘어, AI로 인한 초과 이윤을 국민에 환원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최근 글로벌 AI 열풍으로 인해 실적과 주가 상승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낸 초과 이익을 세금 등의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후폭풍이 상당하다.

 

먼저 지난 12일 순조롭게 출발하며 6거래일 연속 상승 마감이 예상되던 코스피는 김 실장의 발언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자, 상승분을 반납하고 2%대 하락 마감했다. 장중 한때 코스피가 7999.67까지 올랐다가 7400선까지 밀려났다. 이날 종가 기준 외국인은 약 5조 6000원 순매도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한국 주식 시장이 ‘AI 수익 기반 국민배당’ 발언에 출렁였다」제하의 보도를 통해 “한국의 한 고위 정책 당국자가 AI 산업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세금을 활용해 국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언급한 이후 한국 증시가 큰 변동성을 보였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큰 수혜를 본 상황에서 이익 재분배 압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김 실장의 국민 배당금 제안이 발언이 이날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됐다는 취지였다.

정치권도 민감히 반응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발언을 향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일제 반발하고 나섰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을 정부가 가져가서 나눠준다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 배급 경제”라고 지적했다.

 

또 같은 날 송언석 원내대표는 “반도체와 AI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으로 초호황 뒤 급락이 반복되는 시장에서, 미래 수익을 가정한 국민배당금 논의부터 꺼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청와대에 김 실장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다.

 

그 외 언론과 유튜브, SNS 등 각종 미디어에서도 김 실장의 발언이 기사와 영상 콘텐츠 등으로 제작돼 퍼지면서 찬반 여론이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 노조의 성과급 지급 등을 둘러싼 파업 행보가 국민적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기업의 이익 공유 주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상황이다. 이에 사기업의 초과 이윤을 국민에 나누자는 취지의 제안에 역시 반발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책임 있는 기업의 주된 목표, ‘회사 발전, 재무독립성 추구, 주주 환원’

 

지난 2016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국회 상임위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그의 답변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한 국회의원이 조 회장을 향해 “한진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취지로 물었다. 당시 상임위가 구조조정과 고용승계 등이 주요 이슈였던 만큼 해당 국회의원은 “직원(노동자)들이 회사의 주인이다”라는 답변을 내심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주주들의 회사”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해당 국회의원은 다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굳이 경영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기업(주식회사)이 비즈니스를 하는 주된 목적(Primary Objectives)은 이익을 발생하고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것이다. 또 그 이익 발생에 공헌한 근로자에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면 기업은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영국의 경영학자이자 책임 경영 선구자로 알려진 조지 고이더(George Goyder)는 자신이 집필한 「책임 있는 기업(The Responsible Company, 1961)」에서 책임 있는 기업의 주된 목표로 ▲회사의 사업을 확장·발전·개선하고, 재무적 독립성을 구축한다. ▲주주들에 공정하고 정기적 배당금을 지급한다. ▲근로자들에게 가능한 최상의 근로 조건 아래 공정한 임금을 지급한다. ▲소비자들에게 합리적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기업의 주된 목표 어디에도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의무적으로 환원하라는 말은 없다.

 

이미 이익을 본 회사와 그 구성원들이 ‘납세’로써 그 이익 발생에 따른 사회적 환원을 이행했기 때문이다.

 

AI로 인해 수혜를 본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하더라도,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반영한 법인세 비용 합계는 약 11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도보다 4조 6000억 원 이상 늘어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순이익의 약 10%를 법인세로 지출했고, 업계에서는 올해 두 회사의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약 500조 원)를 반영하면 100조 원 이상의 법인세를 납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4년 기준 연간 약 4000억 원을 사회공헌 비용을 지출하고 있고, 그 규모를 점차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회사가 올린 이익에 대해 사회에 충분히 환원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술력으로 먹고사는 회사들은 글로벌 경쟁으로 인해 감가에 민감하며, 이에 더 뛰어난 성능의 제품을 신속하게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발생한 이익을 재투자해 연구개발과 인프라 및 인력 확충이 필수다.

 

그런데 그 이익을 국민에 배당한다면 당장은 다들 재분배의 혜택을 볼지도 모르겠지만, 회사가 재투자를 적절히 하지 못해 향후 글로벌 경쟁사에 밀려 손해를 본다면, 그 손실을 국가가 메꿔줄 것도 아니지 않는가.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이 적지 않다. 지난 4월 말 기준 외국인의 삼성전자 보유 비중은 무려 49.2%에 달한다.

 

만약 김용범 실장이 제안한 대로 국민배당금 제도가 현실화한다면, 회사의 재투자 및 배당 여력에 의구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앞서 언급한 조지 고이더가 강조한 책임 있는 기업의 주된 목표 중 하나인 ‘재무적 독립성(financial independence)’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

 

사실 한국 국민들에 대한 ‘부의 재분배’보다 자신들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투자의 목적이 맞춰진 외국인 투자자들로서는 이러한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김 실장이 제안한 국민배당금 제도는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손해까지 얽힌 대단히 엄중한 사안이다.

 

국민배당금 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당시부터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진한 금융기업들의 초과 이익에 대한 40% 횡재세 법안과 유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해당 법안이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현실화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당시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자기들 권력은 남과 나누려 하지 않으면서, 기업에는 이익을 나누라고 한다. 또 그렇게 나누면 ‘우리 당이, 우리 정부가 세수를 확보했다’며 그 성과는 자신들이 가지려 한다”고 필자에게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결국 이번 이슈를 두고 미디어에서는 이번 정부 고위 인사들의 성장을 바라는 기업 사정에 대한 공감 부족과 분배에 초점을 맞춘 경제 인식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