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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순>, <화려한휴가>, 역사는 살아있다

역사적 진실에 최선을 다하며, 주제의식 표현해야


<화려한 휴가>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우리생애최고의순간>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화려한휴가>를 먼저 논할 필요가 있다. 비단 같은 시나리오 작가가 집필했기 때문이 아니다. <화려한휴가> 제작진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차용했으면서도, 역사 영화가 아니라 멜로드라마라 제작 기획의도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실 상 역사적 고증을 포기한 채, 범여권 세력의 입맛에 맞는 편파적 정치물로 전락시켰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라는 스포츠의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했다. 그러나 선수 개개인의 이름부터 실명이 아닌 데서 보여주듯, 제작진은 스포츠 역사물을 표방하지 않았다. 즉 <알리>와는 근본적으로 기획이 다른 것이다. 비주류의 애환이라는 주제의식을 다루기 위해, 처음부터 스포츠의 역사적 진실은 포기한 것이다. 지금부터 논의할 점은 대중예술에서 주제의식과 미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역사를 어떤 식으로 다루느냐가 될 것이다.

첫째, 역사적 사건을 차용했다면, 그 어떤 경우라도 완벽한 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둘째, 어차피 영화는 허구이므로 주제의식의 표현을 위해서라면 역사적 사실은 변형될 수 있다.

이는 어찌보면 주관적 판단이므로, 논의를 던져보겠다는 뜻이지, 나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의사는 없다. 또한 네티즌들의 악성 리플이 달린다 해도,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의 팬 입장에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누구처럼 집단테러 당했다고 자기 홍보하느라 호들갑 떨지 않을 테니, 마음껏 비판해라.

<화려한 휴가> 광주 항쟁의 지도자가 없다

<화려한 휴가>는 최근 보수단체로부터 발포 장면 등에 관하여 역사왜곡이라며 법적 소송을 당했다. 필자가 제기하는 역사 문제는 그런 장면 하나하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로 제기한 광주항쟁의 역사에서 운동의 지도자를 철저히 배제시켰다는 측면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은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운동권 지도자를 배제하면서, 광주의 역사가 영화로 재현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즉 그들은 역사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필자도 똑같이 <화려한 휴가>의 결정적인 약점은 운동권 지도자의 배제라 본다. 그러나 필자는 역사의 문제가 영화예술의 문제로 접근한다. 제작진이 말하는 휴먼 멜로 드라마로서의 영화의 미적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광주항쟁에 우발적 분노로 참여한 시민들의 삶을 다루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운동의 지도자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역사의 영웅으로 변질된다. 신분만 평범한 시민이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은 모두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영웅적 행보를 보인 것이다. 대규모 집회도 그들이 주도하고, 공수부대와의 전투도 그들 스스로 시민군을 결성하여, 스스로 작전을 짜고, 스스로 협상하고, 스스로 최후의 전투를 결정한다. 일단 이는 진보지식인들이 지적한 대로 잘못된 역사이다.

평범한 시민들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조연으로라도 운동권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이 역사의 재현에 맞다. 이들이 빠지며 얻게 되는 효과는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계엄군이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평범한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장면을 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자가 <화려한 휴가>에서 가장 분노한 장면은 역시 발포 장면이다. 보수단체들처럼 그게 사실이냐 왜곡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시민들이 중무장한 공수부대와 대치한 채로 그들을 조롱하며 자극하는데, 대체 운동권 지도자들은 어디 가 있단 말인가. 운동권 리더들이라면, 미리 정보를 얻고 시민들을 무조건 해산시켰어야 하는데, 영화상으로만 보자면 그대로 방치시켜, 무차별 죽음을 당하게 된다. 영화의 의도는 잔인한 전두환 정권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그와 동시에 대체 저 지경에 이를 동안 운동의 리더들은 뭐 했냐라는 의문도 함께 제기되는 것이다.

<화려한휴가>는 이런 결정적인 역사 왜곡 탓에, 진보와 보수가 극한 대치를 했던 2007년도의 상황에서는 정치세력의 협조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조금씩 중도지향을 길을 걷게 되면, <화려한휴가>는 다시 언급조차 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논의가 된다면, 진보진영이 만든 반공영화 수준의 역사 왜곡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과 <복서>

19997년, 다니엘데이루이스 주연의 <복서>란 영화가 있다. 전설적인 아일랜드의 세계 페더급 챔피언 베리 맥기간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은 베리 맥기간이 아니었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처럼 소재만 차용했을 뿐이지, 전체 영화 내용은 대부분 창작이었기 때문이다.

<복서>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극심한 아일랜드 내의 종교 갈등을 복싱이라는 스포츠로 풀어보려는 한 복서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베리 맥기간의 일생이라는 홍보와는 달리, 처음부터 주인공이 감옥에서 13년 만에 출소하는 등, 맥기간의 실제 삶과는 너무도 달랐다.

맥기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맥기간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의 삶에 일단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너무 과장되었고 너무 영웅화시켰다. 물론 골수 권투팬을 제외하곤 맥기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영화와 역사의 진실이 그렇게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리얼리즘의 가치를 담은 영화라면, 맥기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외면으로만 볼 수 없는 내면의 진실과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리얼리즘 예술의 기본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관악산을 묘사하는 소설가가 “관악산에 풀이 덮였다”라는 문장을 써도 충분하겠지만, 구태여 관악산에 10번씩 오르고, 모든 식물연감을 찾아서, 관악산에 있는 모든 풀을 조사하여, 쓰는 이유도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게 예술의 현실의 재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알리>와 'We were the king'

스포츠의 역사적 진실을 강조하면, 다큐멘터리를 예로 든다. 이에 대해 가장 좋은 소재가 바로 극영화 <알리>와 다큐멘터리 'We were the king'이다. 'We were the king'은 알리와 조지포먼의 킨샤샤의 대결을 다큐멘터리로 구성한 것이다. 이는 훗날 아카데미 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기도 했다.

<알리>는 다큐멘터리라 불려도 될 정도로, 대사 하나, 동작 하나 모두를 완벽히 재현했다. 그럼 <알리>와 'We were the king'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다큐멘터리는 영상적 자료가 한정되어있다. 아무리 감독이 더 많은 표현을 하고 싶어도, 찍어놓은 영상 자료가 없으면, 도리가 없다. 감독의 표현력과 상상력이 크게 제한받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실제라는 또 다른 표현효과 때문에, 감독들은 묵묵히 이러한 제한을 받아들이며,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물론 그러다보니 마이클무어 같은 사람은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면서도 극적 구성을 하는 새로운 형식을 들고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알리>는 대사와 몸동작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카메라 각도와 거리 등을 조절하여, 다큐멘터리에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조프레이저 전에서 최종회에 레프트훅 일발에 다운을 당한 알리의 모습은 권투팬들은 수없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레프트 훅을 맞게 되는 0.5초 동안의 알리의 표정과 알리의 내면 심리는 다큐멘터리로 표현될 수 없다. <알리>에서는 느린 화면으로 알리의 심리를 “놈이 온다”라는 한 문장으로 처리했다. 극영화가 다큐멘터리를 능가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 다큐멘터리는 없을까

<알리>의 제작진들이 기존의 권투영화와 비교할 때 훨씬 더 정확한 진실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We were the king'이라는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알리>에서 마음대로 찍었다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영화라는 혹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위에서 언급한 베리 맥기간의 <복서>는, 베리 맥기간의 복서로서의 삶이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허구적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왔다.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은 여자핸드볼이라는 비인기 종목이다. 그들이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깝게 결승에서 패했다는 점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실제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가상이지만 만약 여자핸드볼팀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출전 과정에 대해 'We were the king'과 같은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제작진이 지금과 같은 영화는 만들지 못했을 거라 추측한다. 훨씬 더 진실에 근접했어야 했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도 마찬가지이다. <화려한 휴가>는 잔혹한 장면이 넘쳐남에도, 정권이 특혜를 주었는지, 12세 관람가로 책정되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15세 관람가였다는 점을 참고한다면, 놀라울 만한 특혜이다. 그리고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중고생 단체관람이 줄을 이었다.

광주의 역사적 진실은 차근차근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꽤많은 대중들이 광주항쟁의 리더들이 누구이고,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된다면, <화려한 휴가>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기획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중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작진 마음대로 역사를 구성했으며, 이 때문에 필자는 <화려한 휴가>는 정확히 <300>과 같은 장르의 영화라 단언한 것이다.

스파르타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제작진은 마음놓고 백인우월주의를 역사에 담아버렸다. <화려한 휴가> 제작진도 마음놓고 당시 군인들을 악마로 묘사해놓은 것이다.

아무리 작은 역사라도 고증이 필요하다

<화려한휴가>와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을 등치시켜놓을 수는 없다. 광주항쟁의 진실은 대한민국 역사를 걸고 풀어야 하며, 대중화시켜야 할 사안이지만, 여자핸드볼의 역사는 그런 정도 수준은 아니다. 또한 당사자들이 직접 시비걸지 않는 이상 뭐라 그럴 사람들도 없다. <복서>의 주인공 배리 맥기간도 영화를 보고 뭐라 그런 적 없으니, 아테네의 주역들이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을 보고 찬사를 했다고 해서, 영화의 결점이 덮어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라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세계 최강이라는 대한민국의 대표팀 감독이 자신의 선수의 부상의 위험이 있는 데도, 빗속에서 경주를 하여, 선수촌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없으면, <우리생애최고의순간>의 감동이 줄어드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마치 <화려한휴가>에서 아무런 지도자도없이 공수부대와 대치하여, 무방비로 시민들이 총살을 당하는 그 장면이 없으면, 휴먼 멜로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신데렐라맨>의 주제는 <록키> 같은 스포츠맨의 인간승리가 아니었다. 단지 1930년대 대공황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족애를 확인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가장의 삶을 그렸다. 단지 그가 우연히 권투선수였고, 그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뿐이다. 1930년대에는 수많은 신데렐라맨이 있었다. <신데렐라맨>이야말로 스포츠영화가 아닌 휴먼드라마였다.

그래도 짐 브래독의 경기 장면 하나하나 고증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애초에 던졌던 답은 전자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영화한다면, 일단 정확한 재현을 한다는 전제에서, 내면의 주제의식을 담아야 한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언젠가는 진실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 바로잡기 차원이 아니라 보다 더 좋은 영화를 위해서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베리 맥기간의 삶과 다르다고 해서 <복서>를 형편없는 영화라 말하지 않듯이, <우리생애최고의순간> 역시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다는 아쉬운 점을 지적할 뿐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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