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하는 직원조차 빼라"던 지시는 누구를 향한 쇼였나

  • 등록 2026.08.11 09: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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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僞善)의 성벽 위에서 외치는 공허(空虛)한 '부동산 정의(正義)'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청와대에서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서류를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여선 안 된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청와대 업무 배제를 지시한 바 있다. 국무회의장 공기를 차갑게 가른 대통령의 호통에 수많은 국민은 잠시 착각했다. 마침내 권력의 최상층부가 스스로에게 가장 혹독한 칼날을 겨누려 하는가 보다, 이번만큼은 주택 정책의 비리나 사익(私益) 추구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하급 실무자의 손끝에 쥐어진 복사지 한 장까지 검증하겠다는 그 서슬 퍼런 일갈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고 한탄하던 무주택자들의 메마른 가슴에 작은 기대를 품게 하는 듯했다. 매달 치솟는 월세와 전세 사기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서민들은, 정권의 단호한 선언 뒤에서 아주 잠시나마 '공정한 세상'의 희미한 그림자를 보았다고 믿었다.

 

찰나(刹那)에 불과했던 '장엄한 선언'의 유효기간

 

그러나 그 장엄한 선언의 유효기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그 기만적인 구호 뒤편에서, 정권의 권력 엘리트들은 교묘하게 자신들만의 '다주택 꿀단지'를 지키고 있었다. 대중을 향해서는 '실거주 목적 외엔 집을 사지 말라', '불로소득은 모조리 환수하겠다'며 서슬 퍼런 징벌적 규제의 채찍을 휘두르더니, 정작 자신들의 손에는 강남의 노른자위 부동산을 꽉 쥐고 끝끝내 놓지 않았다.

 

국민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함께 대출 규제는 물론 세금 폭탄을 퍼부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그 규제의 그물망을 유유히 피해 갔다. 국민에게 요구한 가혹한 도덕적 잣대는 정권 내부의 묵인(默認)과 방조(幇助) 속에서 허탈한 자가당착(自家撞着)의 비극으로 돌아왔고, 우리가 지금 목도(目睹)하고 있는 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닌 차가운 위선의 성벽이었다.

 

정권 교체의 일등 공신이자 대통령의 지근거리를 지켜온 김상호 청와대 춘추관장의 사퇴 전말은 이 정권의 권력층이 대중을 얼마나 기만해 왔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비극이다.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청와대 최다 주택 보유자로 이름을 올려 국민의 눈총을 받더니, 끝내 강남 다세대주택의 주차장 계단실까지 불법으로 개조해 월세를 받아 챙겨왔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평범한 서민들은 집 한 채에 붙는 세금과 대출 이자 부담에 밤잠을 설치고, 평생 한 번 당첨될까 말까 한 청약 통장 하나에 온 가족의 미래를 걸며 하루하루 고단한 삶과 팍팍한 일상을 견딘다. 그러나 권력의 핵심은 불법 무단 증축 건축물로 세를 놓아 자산을 부풀리고, 서민들의 눈물 어린 월세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그나마 내려놓았다는 청와대 춘추관장이라는 공직조차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다주택을 해소하고 계속해서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공직의 무게를 감당하기보다는, "권력은 유한(有限)하지만 강남의 자산은 영원(永遠)하다"는 그들만의 비뚤어진 본심을 입증한 씁쓸한 전말일 뿐이었다. 공직의 명예보다 강남 아파트 한 채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그들의 실체 앞에 서민들이 느낀 것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선 아득한 허탈감이었다.

 

'하급 직원의 손끝'만 검증하겠다는 기만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 정권에서 주택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주물러온 당사자들의 뻔뻔함이다. 올해 초 재산 신고 당시 부동산 정책 업무를 직접 다루면서도 다주택을 유지해 논란을 일으켰던 이성훈 전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의 행보는 참담함을 넘어 깊은 분노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는 최근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현장 정책을 집행하는 대표적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종 아파트와 서울 강남구 다가구주택 지분을 여전히 손에 쥐고 다주택자 신분을 유지한 채, 뻔뻔하게 대한민국 주택 공급의 수장(首長) 자리를 꿰찬 것이다.

 

"복사하는 직원조차 다주택자는 빼라"던 대통령의 지시는 대체 누구를 향한 쇼였는가. 정작 수만 가구의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수장 자리에는 다주택자를 앉히면서, 이름 모를 하급 직원의 손끝만 검증하겠다는 것은 대중을 향한 조롱인가, 스스로를 향한 기만인가.

 

세입자 문제 때문에 등기가 지연되고 있다는 비겁한 변명 뒤에 숨어 넘어가기엔, 헐벗은 마음으로 매달 월세를 입금해야 하는 서민들의 가슴에 박힌 상처가 너무나 크고도 깊다. 월세 입금 날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는 무주택자들의 삶을 그들이 단 한 순간이라도 이해해 본 적이 있는가.

 

이들뿐만이 아니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강단에 서서 주택 공개념을 목 놓아 부르짖다 정작 본인은 강남 47평 아파트 2채를 쥐고 있던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송파 아파트와 강남 오피스텔 등 여러 채의 부동산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가 청문회 직전에야 벼락치기로 처분하는 촌극을 벌인 한성숙 국무총리까지. 정의로운 척, 깨끗한 척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우던 이들의 진짜 얼굴은 '자산의 사다리'를 독점한 욕망(慾望)의 화신(化身)들이었다.

 

위선(僞善)의 성벽부터 스스로 무너뜨려라

 

이쯤 되면 고위 공직자 라인업은 위선과 내로남불의 '명예의 전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들은 강남의 든든한 요새 안에서 불패의 자산을 누리면서, 서민들에게는 "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거주하는 곳"이라는 입에 발린 훈계를 늘어놓는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삶을 담보로 벌이는 가장 악질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부 정책의 동력은 화려한 말 잔치나 국민을 죄인 취급하는 징벌적 규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도층이 스스로를 깎아내는 솔선수범(率先垂範)과 진정성 있는 신뢰(信賴)에서 나온다. 대통령 본인조차 국무회의에서 "정부나 시장 상황에 대한 불신(不信)을 최소화하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며 국민의 삶은 규제라는 감옥에 가두고, 뒤에서는 강남 자산이라는 꿀단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 권력층을 보며 어느 국민이 이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겠는가.

 

자신들이 약속한 정의를 스스로 짓밟고,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을 꾸던 서민들의 가슴에 비수(匕首)를 꽂은 이 정권의 권력 엘리트들의 위선이야말로 이 나라의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한 가장 잔인한 주범(主犯)이다.

 

'복사하는 직원'의 손끝을 탓하며 엄포를 놓기 전에, 자신들이 높게 쌓아 올린 위선의 성벽부터 스스로 무너뜨려라. 그 거울에 비친 처참한 위선의 얼굴을 깨뜨리지 않는 한, 이 정부가 외치는 모든 부동산 개혁은 국민의 가슴에 또 한 번 피눈물만 흘리게 하는 공허한 흑역사(黑歷史)로 남게 될 것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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