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 = 유용욱 주필 |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지난 6월 5일부터 시작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오늘로 무려 25일째를 접어들고 있다. 그곳에 모여든 성난 민심이 촉발한 이번 선관위 국조특위 첫 기관보고 과정이 TV로 생중계되었는데, 특위에 출석한 고위공직자들의 답변 태도나 어처구니없는 변명에 대부분 국민의 인내심은 이미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 무너질 때, 대중이 느끼는 피로감은 분노를 넘어 모멸감으로 이어진다. 최근 대한민국을 뒤흔든 두 개의 축, 즉 국민의 삶을 이끄는 정치 권력의 정점과 국민의 희로애락을 책임지는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과정의 불공정, 유체이탈(幽體離脫)식 화법, 그리고 책임 없는 권력의 폭주. 이재명 대통령과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두 사람의 행보는 우리 사회의 ‘책임 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서글픈 데칼코마니(décalcomanie)다.
출발부터 얼룩진 권력, 잃어버린 과정의 정당성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비호 아래, 일각에서는 사실상 채용 비리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절차적 흠결을 안고 대표팀 사령탑에 앉은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은 수많은 축구 팬들과 국민에게 깊은 박탈감을 안겼다. 규칙과 공정을 생명으로 해야 할 스포츠계에서 일어난 밀실 행정의 극치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권력 창출 과정 역시 이와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다. 수많은 부정선거 의혹과 사법 리스크는 물론, 취임 이후 이어지고 있는 다양한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잡음은 임기 내내 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자, 국민적 불신의 씨앗이 되고 있다.
시작이 불공정하니 과정이 순탄할 리 없고, 그 결과 역시 온전할 리 만무하다. 국민의 지지와 정당성이라는 기초가 부실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오만과 독선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와 유체이탈(幽體離脫), 내 잘못은 없다 ?
두 사람의 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심리학적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리가 요구하는 도덕적 · 실력적 기준과 자신의 초라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들은 현실을 왜곡하거나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을 택한다. 내가 틀렸을 리 없다는 맹목적 자기합리화다.
홍 감독은 매 경기 실망스러운 경기력과 결과가 나올 때마다 “과정의 일부”라거나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판의 화살을 피해 간다. 정작 감독 본인의 전술적 무능과 리더십 부재는 교묘하게 가려진다. 이 대통령 역시 국가적 위기나 실정(失政)이 발생할 때마다 전 정권 탓, 야당 탓, 혹은 시스템의 문제로 돌리며 자신은 마치 제3자인 양 유체이탈식 담화를 남발한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최고 책임자의 진솔한 반성이건만, 그들의 입에선 언제나 면피성 변명만 흘러나온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끝판왕, 누가 누구를 꾸짖는가 !
더욱 국민을 분노케 하는 것은 반성 없는 태도와 적반하장식 ‘책임 묻기’다. 홍명보 감독은 말로는 “모든 것은 감독인 제 책임”이라고 읊조리지만, 정작 거취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장에서나 그 밖의 어느 자리에서도 진정으로 고개 숙이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그의 화법(話法)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기만적(欺瞞的)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의 화법은 한술 더 뜬다. 국정 운영의 난맥상 속에서 늘 누군가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호통을 치지만, 국민은 언제나 황당할 따름이다. 국정의 최종 책임자이자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 자신이다. 자신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서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말인가. 내로남불을 넘어선 이 희한한 화법은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오만함의 발로다.
결국 국민적 분노가 향하는 곳은..
권력의 크기는 책임의 크기와 비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目睹)하는 것은 권력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비겁한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축구 성적이 나빠서도, 정치가 시끄러워서도 아니다. ‘공정’과 ‘책임’이라는 사회적 정의가 그들에 의해 철저히 조롱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과 이재명 대통령은 기억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권력의 끝은 언제나 비참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말이다. 지금이라도 유체이탈의 유령에서 벗어나 국민 앞에 진정으로 고개 숙이고 스스로의 책임을 통감(痛感)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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