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유용욱 주필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탱크데이’ 텀블러 마케팅은 변명의 여지 없이 명백히 경솔했고 또 부적절했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현대사의 가장 깊은 상처와 비극을 상업적 이벤트의 제물로 삼은 역사 감각의 부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점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을 흐릴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정작 우려스러운 사안의 핵심은 그 이후 전개되는 논란의 양상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잘못된 마케팅 하나에 대해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개입은 과연 헌법적 절제의 원칙 범위 안에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이다.
이번 사안에서 진정 놀라운 장면은 기업의 실책이 아니라 정부의 과민 반응이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논란 당일 대표이사를 경질했고, 그룹 차원의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룹으로선 쉽지 않았을 결정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실행에 옮겼고, 필요한 조치를 최대한 빠르게 취했다. 다시 말해 실무선의 판단 오류와 결과적 실패에 대해 조직이 즉각 책임을 지는, 전형적인 시장 자정(自淨)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격한 언사를 동원해 가며 “도덕적·행정적·법적·정치적 책임”을 거론했고, 뒤이어 행정안전부와 국가보훈부 등 정부 부처가 잇따라 기관 차원의 ‘불매 선언’과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다. 이쯤 되면 여기서부터 이번 사안은 기업의 실수를 넘어 국가 권력의 태도라는 엄중한 영역으로 이동한다.
기업 제재인가, 정치적 응징인가
국가행정권은 본질적으로 물리력을 수반하는 강한 힘이다. 그렇기에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그 사용에 엄격한 요건과 같은 최소한의 제동장치가 마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과잉금지의 원칙'이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적 명령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대응은 과연 이 기준을 충족했는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제시 이후, 특정 민간 기업을 향한 전방위적 압박이 사실상 공공기관 차원에서 조직화됐다. 행정안전부는 정부 공식 행사에서 해당 기업 상품을 배제하겠다고 선언했고, 국가보훈부는 ‘허위사실 유포 모니터링 강화’라는 서슬 퍼른 표현까지 동원했다. 이는 단순한 유감 표명이나 가치 선언을 넘어, 국가가 특정 기업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겠다는 정치적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도 권력의 비대칭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기업은 사장을 잘랐는데, 권력은 같은 잣대를 자기 진영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고 일갈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이 지적의 핵심은 기업 옹호가 아니라 권력 행사 과정에서의 일관성과 형평성에 관한 것이다. 정치가 도덕의 심판관을 자처하려면, 그 도덕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먼저 적용되어야 한다.
공권력의 불매(不買), 약자를 향한 칼날
민주사회에서 소비는 개인의 선택이며, 불매는 시민의 권리다. 그러나 정부와 공공기관이 이 이슈에 뛰어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자 전혀 다른 주체가 논란에 가담하는 모양새가 된다. ‘정치적 중립성’과 ‘시장에 대한 비개입 원칙’은 공권력이 준수해야 할 기본 책무다. 공공기관이 특정 민간 기업을 콕 집어 불매를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의사 표현'이 아니라 불이익을 전제로 한 '권력 행사'이자 초법적 규제가 된다.
필자가 더욱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지금 달려드는 그 권력의 행사 여파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전 매장이 직영 체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불매가 장기화될 경우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본사의 의사결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장의 청년 노동자들과 바리스타들이다. 근무시간 축소와 고용 불안이라는 현실적 고통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이미 바닥에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적 분노가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국가가 방조하고 조장하는 꼴이다.
역사의 도구화를 경계한다
5·18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이정표 중 하나다. 따라서 그 숭고한 의미를 결코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국가 권력은 더욱 조심스럽고 엄정해야 한다. 역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해석의 독점자, 도덕의 집행자처럼 행동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근간은 위태로워진다.
역사적 비극을 보호한다는 미명(美名) 하에 비판을 위축시키고 시장의 영역에 공권력이 깊숙이 개입한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권력 남용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된다. 역사를 가장 모독하는 방식은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화'하려는 시도이다. 선의의 분노가 권력의 과잉으로 변질될 때, 역사는 통합의 자산이 아니라 진영을 가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이번 스타벅스 사태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기업은 역사적 사실 앞에서 더 자성(自省)해야 하고, 국가는 권력 앞에 더욱 더 절제(節制)해야 한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과 권력을 과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는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광장의 시민과 현장의 노동자에게 돌아간다는 이 평범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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