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성벽에 갇힌 대한민국, ‘미디어 세대 전쟁’을 끝내려면

  • 등록 2026.05.11 10: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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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유용욱 주필 |오늘날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가장 거대한 균열은 어디서 오는가. 정치적 이념, 계층의 양극화, 젠더(gender) 갈등 등 수많은 진단이 쏟아지지만, 그 이면에는 더 근본적이고 무서운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세대와 계층을 가로질러 서로를 이해하게 했던 ‘공통 서사(Common Narrative)의 실종’이다.

 

 

지하철 안의 두 세계, 단절된 행성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살펴보라.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는 태블릿 PC를 눈앞에 바짝 대고 한 시간짜리 정치 비평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 옆의 20대 청년은 무선 이어폰을 낀 채 손가락을 쉼 없이 튕기며 15초짜리 숏폼 영상을 넘긴다.

 

겉보기엔 평온한 동승(同乘)이다. 그러나 이들이 마주하는 세계는 결코 같지 않다. 각자의 스마트폰 안에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 서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 광장의 붕괴와 필터 버블의 역설

 

과거의 미디어는 세대 간의 거대한 ‘광장(廣場)’이었다. 전날 밤 온 가족이 함께 본 뉴스와 드라마는 다음 날 밥상머리와 직장에서 자연스러운 공통 화제가 됐다. 미디어는 서로 다른 삶의 조건을 연결하며 “우리는 같은 공동체”라는 감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의 미디어는 공론장이 아니라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반향실(Echo Chamber), 즉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바뀌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오래 머물고, 더 많이 반응할 만한 정보만을 골라 제공한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의 클릭과 체류 시간, 분노와 쾌락의 선택이 누적되어 설계된 치밀하고도 편향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가두지만, 그 성벽의 벽돌 하나하나는 우리가 직접 쌓아 올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정보는 외면해 온 인간의 욕망과 기술이 공모한 결과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다. 그 결과, 60대의 유튜브 추천 목록과 20대의 틱톡·쓰레드 피드가 교차할 확률은 점점 0에 가까워지고 있다.

 

‘압축 소비’와 맥락의 붕괴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숏폼 중심의 미디어 소비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이 세대는 정보를 ‘이해’하기보다 ‘빠르게 섭취’하며, 핵심만 남긴 요약본에 익숙하다. 긴 설명과 느린 전개는 비효율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것이 곧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의 상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긴 다큐멘터리나 아카이브형 저널리즘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젊은 독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깊은 콘텐츠가 알고리즘의 전면에 등장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데 있다. 빠른 자극이 아닌 느린 사유는 플랫폼의 수익 모델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압축 소비’의 진짜 위험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의 삭제다. 기성세대가 지나온 치열한 역사적 경험은 한 줄짜리 농담으로 축약되고, 청년세대가 겪는 구조적 불안은 ‘나약함’으로 오독된다. 이 틈을 알고리즘이 파고든다. 갈등은 증폭되고, 오해는 고착된다. 분노는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가 되었고, 미디어는 그 분노에서 조회수와 광고 수익을 뽑아낸다.

 

저널리즘의 부재, 그리고 선택의 문제

 

이 지점에서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언론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파편화했다. 자극적인 제목, 맥락 없는 속보, 분절된 인용들이 난무한다. 물론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적 변명도 존재한다.

 

그러나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클릭 수를 포기하더라도 맥락을 지키는 편집, 포털 중심 유통에서 벗어나려는 실험, 느리지만 신뢰를 축적하는 기획은 분명 가능했다. 그럼에도 다수의 언론은 단기 성과를 택했다. 알고리즘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편승한 것이다. 그 결과, 언론은 세대를 잇는 해석자가 아니라 갈등을 증폭시키는 중계자가 되어버렸다.

 

다시 ‘거울’ 앞에 서야 할 시간

 

언론의 본령은 거울이다.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불편한 타인의 얼굴과 내가 외면해 온 사회의 균열까지 함께 비추는 거울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을 혐오하는 태도가 아니라,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경계할 수 있는 미디어 문해력의 회복이다.

 

젊은 세대는 15초의 자극 뒤에 숨겨진 복잡한 인과관계를 추적하려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기성세대 역시 자신의 경험이 더 이상 유일한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감수성을 배우려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는 갈등을 수익화하는 장사를 멈추고, 다시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날 수 있는 공동의 광장을 재건해야 한다.

 

미디어가 세대 전쟁의 무기가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는 교차로가 될 때, 이 사회의 지독한 불통(不通) 역시 완화될 수 있다. 우리가 읽고 보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라면,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정보가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타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마주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언론과 독자 모두에게 남겨진 마지막 저널리즘적 과제일 것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유용욱 주필 macgyve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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