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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일 관계사를 바라보는 애잔한 시선, ‘날씨는 맑으나 파고는 높다’

“대한민국에게 '친일'은 절대악도 아니었고, '반일' 또한 절대선도 아니었다. 친일과 반일을 이중주로 국가 사회적 시너지를 이끌어낸 리더십과 그 국민들의 위대할 뿐”

외신 기자 중 최장수 서울 특파원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현재는 ‘산케이신문’ 객원 논설위원으로 주재중) 기자.

구로다 기자의 책 ‘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원제 : '이웃 나라에서의 발자취, 서울 거주 35 년 일본인 기자가 따라간 일한역사사건부(隣国への足跡 ソウル在住35年日本人記者が追った日 歴史事件簿)'를 지난 주말 완독했다. 



나의 독서 습관이기도 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 또한 문장 한 줄, 토씨 하나까지 곱씹어 가며 읽어야 했다. 물론 부족한 인지 능력과 이해력으로 말미암은 이유가 훨씬 큼을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고는 한다.

그러나 ‘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를 읽는 시간은 잘 정제된 에세이를 읽는 편안한 시간이면서도 한일 관계사의 배경을 수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사연들을 가슴에 담아야 하는 애잔한 시간이기도 했다. 행간행간마다 도드라지는 역사적 사실들과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전혀 다른 관점을 마주하는 순간은 차라리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그 고통으로 인한 탄식 이후에 다가오는 깨달음과 참회는 나의 의식을 정화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1965년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의 ‘교토통신’ 초년 기자 시절을 거쳐 1971년 ‘교토통신’ 서울지국 특파원으로 부임, 재직하면서 지금까지 사반 세기 동안을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도 여느 한국 기자들처럼 인사동 뒷골목 풍경에 익숙하고, 청진동 해장국과 함께하는 쐬주 한 잔의 맛을 즐긴다. 그런 그가 한일 관계사 속에서 건져 내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여서일까? 매 꼭지 그가 풀어 가는 한일 관계사 속의 갈등과 사소한 사회 현상들조차도 따뜻하면서도 전체 맥락 속에서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모두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 장이 ‘망국의 미스터리’로부터 시작, 2장에서는 러일전쟁이 촉발된 현장이 바로 조선 땅이었음을 밝힌다. 최근 침몰한 보물선(?)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돈스코이 호'가 가라앉아 있는 독도 근해에서의 해전과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국측의 과잉반응이 왜 허상에 대한 집착에 불과할 수도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민비암살 사건을 다룬 4장을 읽노라면 러시아의 힘에 의탁하고자 한 고종과 민비의 왕실 보전 중심의 외교가 일본에게는 왜 위협적이었고, 그 위협이 왜 일본의 일부 극단 세력(조슈 군벌)의 망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다룬다. 조슈 군벌 일부의 망동에 의한 민비 암살이 결과적으로 당시 메이지 유신을 통해 새 출발한 일본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엉성하고 외교적으로 미숙했는지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통탄과 규탄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그럼에도 어떻든 망국의 황실에 대한 일본 황실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예를 다하려 했던 점들, 식민지 조선에 남겨진 일본의 유산이 오늘날 한국과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루는 꼭지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일본이 한국의 배후 병참기지 역할을 해주는 6.25전쟁 전과정 동안 북한은 또 어떻게 재일 조총련과 스파이들을 통해서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전복시키려 했는지는 나로서는 전혀 생각도 못 했던 지점이다.

말 그대로 전쟁터는 한반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연합군의 전진기지이자 한국의 배후 병참기지 역할을 하면서 그 수혜도 컸지만,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의 파괴 책동을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 공산주의자들의 파괴적 유산이 이후 60년대의 안보투쟁 파동과 70년대의 적군파 소동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60년대 일본 안보투쟁의 주축 세력이 한일수교협정을 극력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대륙의 공산 세력 앞 촛불 같던 한국이 일본과 수교를 함으로써 한미일 안보 축으로의 수렴을 반대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했다. 그들의 선동과 공작은 당시 한국에까지 영향을 주어 한국 대학생들의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이어졌고 6.3사태로까지 비화되기에 이른다.

저자는 여기서(구체적으로는 15장에서 다룸) 1952년 2월 처음 시작된 한일수교 협상이 무려 10년 이상을 끌게 된 이유의 역설을 얘기한다. 이 부분은 독후 서평과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다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특별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특히 해방된 새나라 젊은 세대들로부터 '일본적'인 물을 빼는 것은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입장에 있던 이승만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 '일본물'을 빼기까지 해방부터 따지면 무려 20년이 걸렸다. 그리고 관동군 출신 박정희가 일본과의 수교 협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반일', '한일수교반대'라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국의 새로운 세대, 즉 6.3세대 출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저자의 독특한 '가설'이자 '관점'이다.

그리고 저자는 재일 조총련계 동포 북송 사업 동안 공산주의자들의 간계뿐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의 ‘속죄의식’,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또는 정치적 선의가 부른 비극에 지나지 않음을 고발한다. 그런 '속죄의식'이 끝내는 일본인 납치사건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북조선으로 납치되어 간 일본인에게 '일본화' 교육을 받은 간첩 '마유미(김현희 씨)'가 19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 추락시키기까지 북한 공산독재자는 철저히 일본을 이용했다. 개인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장인데, 이것 또한 지정학적으로 일본이 한반도와 엮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란 게 저자의 생각이다.

마지막 15장에서 저자는 '김일성을 이긴' '박정희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한다. 수교 과정에서의 모순적 역설 때문에 빚어진 장기간의 공전과 6.3세대라는 새로운 세대의 저항을 밑천 삼은 박정희의 한일수교가 결국은 오늘날의 번영이라는 보답으로 한국민에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에게 '친일'은 절대악도 아니었고, '반일' 또한 절대선도 아니었다. 친일과 반일을 이중주로 국가 사회적 시너지를 이끌어낸 리더십과 그 국민들의 위대할 뿐이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반일', 아니 '항일'의 정체성만으로 빚어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세습 공산독재 체재의 북한은 어떤가. 이념과 민족이란 모순된 가치의 포로가 되어 김씨 공산왕조를 연명하기 급급한 체재를 대한민국에 대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이승만의 유산 자체가 '대한민국'이고, 박정희의 유산 자체가 '대한민국의 번영'이다. 그렇게 박정희의 승리로 결론짓는 저자의 관점이 곧 일본의 마음일 것이다.

역사는 절대 단선적으로 볼 일도 아니고, 그렇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내가 있으면 남도 있는 법이다. 개인대 개인의 관계부터 국가대 국가라는 세계체제가 그렇다. 상대적이기도 하고 복합적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서로 갈등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가치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 시혜자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웃한 국가로서 공존의 가치를 공유해 온 일본, 그리고 한국. 역사적으로나 현대 세계에서나 이만 한 국가 관계도 흔치 않지 않은가?

/ 길도형 (도서출판 장소하늘소/타임라인 대표)





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

(원제 : '이웃 나라에서의 발자취, 서울 거주 35 년 일본인 기자가 따라간 일한역사사건부(隣国への足跡 ソウル在住35年日本人記者が追った日 歴史事件簿)


[ 목 차 ]


한국어판 序文 …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01_망국(亡國)의 미스터리_수수께끼의 황제 위임장 

‘잡상인’도 정보원(情報源)이다

굴러 들어온 황제의 위임장

청일전쟁은 ‘조선전쟁’이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을 규탄

황제 위임장의 진위를 밝힌다 

밀사사건에 격노한 이토 히로부미


02_돌아온 러시아 함대_러일전쟁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동서냉전은 서울올림픽으로 막이 내렸다

당당하게 100주년을 위령(慰靈)하는 러시아

개전 전야(前夜) 러시아 함장은 일본 요정에 있었다

전후 첫 일본함대는 부산으로

깨트려져 창고에서 잠자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비석

성역(聖域)이 '언덕 위의 구름' 현장으로


03_멀리서 독도를 바라보다_누가 저 섬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나? 

발틱함대는 독도 앞바다에서 괴멸

갈매기는 ‘우르릉 우르릉’ 하고 운다

독도 영유와 한국합병은 관계가 없다

‘우산(于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쓰시마도 한국 땅’이라는 대일(對日) 보복 심리

독도수비대 대일 전과(戰果)의 허실

독도의 강치는 왜 절멸했는가?


04_회화나무는 남았다_민비(閔妃) 암살사건의 통한(痛恨) 

고도(古都) 서울의 외교가(外交街) 정동(貞洞)

한국의 ‘로쿠메이칸(鹿鳴館)’에서 암약한 미스 손탁 

‘북의 위협’의 뿌리와 러시아에 대한 불안

일본 외교의 미숙함을 드러낸 왕비 참살(慘殺) 

경복궁 한쪽 모서리에서 사라진 참극의 그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영사관의 폭주(暴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슈 군벌(長州軍閥)에 의한 한국 지배의 인과(因果)


05_일본은 한국에 예(禮)를 다했는가?_히로시마와 한국의 기연(奇緣) 

민비 암살사건에 가담한 한국인

망명자에 대한 집요한 보복

조선 왕족도 히로시마에서 폭사(爆死)했다

일본 패전의 날에 경성에서 거행된 장의(葬儀)

일본의 명예를 지킨 일본인 무관(武官)의 자결

파헤쳐진 재한(在韓) 피폭자 문제

히로시마의 밤에 남은 불가사의한 ‘한국’


06_이조잔영(李朝殘影)_한국의 흙이 된 일본 황녀(皇女) 

쇼와(昭和) 천황과 함께 서거한 이방자 비(妃)

한일 합동 장례식에 황족도 참석

‘우리의 왕비’가 되어

낙선재에는 역사의 흔적이 없다

“앞으로는 내가 싸운다”

일본 여성의 헌신에 관해

이방자 비를 뒷바라지한 한국 여성


07_옛 총독부 청사는 왜 해체되었는가?_‘아리랑’과 ‘감격시대’가 말해주는 것 

고궁 파괴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본인

‘아리랑’에 새겨진 한일사(韓日史)

고속철도 ‘아리랑’은 환상이었다!

영화 ‘아리랑’의 필름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인 건조물이 정부에 의해 파괴되다

한국인에게도 ‘희망의 청춘’이 있었다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의 원류는 한국인가?


08_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한국인_한운사(韓雲史)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 

조선학도 특별 지원병은 과감하게 호소했다

“안녕, 일본이여! 나는 용서한다” 

그 시절, 좋은 일본인도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속죄의식

‘몰랐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

창씨개명에 관한 어떤 오해

소년들은 전투기 ‘하야부사’에 환호했다


09_폭발하는 민족감정_고난의 귀환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와 명저 '조선 종전의 기록'

‘종전(終戰)’의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혁명이다, 혁명이다!”

표변하는 한국인들

느닷없이 북에서 밀고 내려온 전쟁

저주 받은 민족, 그 사멸(死滅)의 지옥도(地獄圖)

반드시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10_그 아침의 경복궁은 은세계(銀世界)였다_잔류를 지시 받은 일본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의 회상 

박물관 사수(死守), 그리고 성조기

신생 국립박물관은 눈이 쌓인 가운데 오픈했다

한국에서 보내져온 따뜻한 조의(弔意)

일본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일 혼혈아

북한군과 한국군을 경험한 잔류 일본인


11_6·25전쟁이 시작되었다_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가 저지른 죄 

패전 후의 일본에서도 있었던 보복 피해

6·25전쟁의 ‘쇠 금(金)’ ‘실 사(絲)’ 붐

전쟁 특수로 활약한 ‘소년 아파치’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일본은 제2의 전쟁터가 되었다

저명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북한 환상

김일성을 옹호한 소설 '북의 시인'


12_‘在日 한국인 조국 귀환’의 비극_북한 환상이 안겨준 것 

소년 시절 추억의 재일 한국인

‘지상의 낙원’은 지옥이었다

사회주의 환상과 속죄의식의 함정

누가 그들을 ‘지옥’으로 보냈는가?

영화 '큐보라가 있는 거리'의 시대적 한계

환상으로부터의 탈출


13_흉악 살인범이 민족적 영웅이 되었다_극장형(劇場型) 범죄,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전말 

단순 살인사건인가, 한일 민족문제인가?

항일 애국 테러리스트의 ‘귀국’

‘행복한 생활’에서 ‘방랑 생활’로

라이플총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

“그 자는 예사 인간이 아니다!”

서재나 다름없는 독방에서 초밥까지 먹었다

옥중 결혼 아내와의 기연(奇緣)

타락한 영웅의 일본에 대한 망향


14_김현희(金賢姬)는 왜 ‘마유미’가 되었나?_한국과 일본의 고생은 지정학적인 숙명 

김현희의 일본어는 완벽했다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후퇴했다 

모략 ‘김현희 가짜설’에 대한 반격

KAL기 사건으로 발각된 일본인 납치사건

국민의 안전보다 국가의 안전?

김대중 납치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15_김일성을 이긴 박정희_일본이 한반도에 남긴 유산 

한국과 일본은 왜 오래 국교 회복을 하지 못했나?

“좋은 일도 했다”는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교정상화에 반대한 ‘신(新) 한국인’들

한국에 감사하자?

항일 영웅 전설이 북의 권력을 지탱했다

‘친일’과 ‘반일’이 낳은 역설


출판자의 後記 …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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