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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논단]전두환은 위대한 민주주의자였다 (13부 마지막 회)

Ⅷ. 에필로그 (epilogue)

서해해전으로 전사한 6인의 해군용사 장례식 때, 전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하게 오직 전두환 대통령만이 문상(問喪)을 했다. 바로 이 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향불을 올리며 고개 숙이는 이 모습은, 오늘날 왜 다시 전두환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지도자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쓴 전두환 찬양시로 알려진‘처음으로’란 시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로 시작한다.

 

틀림없는 사실의 기록일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똥물이 흐르는 한강을 오늘의 한강으로 만든 위인이었다.

 

나아가 미당의 시는 86아시안 게임과 평화의 댐 건설, 무역수지 흑자 등을 시적 소재로 다룬다.

 

이 시를 독재에 아부하는 시로 판단하는 진보 측 문학인들의 근거가 바로 5.18 살인마 전두환이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살인마가 아니라, 이 나라를 OECD 선진국 20개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단임을 실천한 가식(假飾)없는 민주주의자였다.

 

우리의 미당은 5000년을 이어온 조국과 민족과 하늘과 역사를, 자신의 문학 안에서 절대의 미(美)로 승화시킨, 끝없는 생명을 노래하던 전통적 서정의 시인이었다. 불초(不肖)들의 혈맥 속에도 미당의 서정이 유전이 되어 흐르고 있다. 먼 후학이지만 감히 문학의 하늘을 이룬 미당을 사모한다.

 

그리하여 친일시인이라 함부로 부르지 말라. 나라를 빼앗긴 백성이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의 시가 생존을 위한 협조였다면, 그래도 너는 손가락질 할 것인가. 더 이상 미당을 욕하고자 한다면, 일제치하를 살았던 너의 부모를 돌아보라. 네 부모 역시 신사에 참배하고 일본왕을 ‘폐하’라 불렀지 않았겠는가.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역사를 창조하는 중심인물이다. 그가 누구이든 간에 5년 혹은 7년 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룩한 대통령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다. 조롱과 비판으로 그 시대의 전부를 매몰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이제 필자(筆者)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든 찬반(贊反)과 호(好)불호(不好)의 의견을 뒤로 하고, 13부 여정 끝 조국을 위해, 아니 전두환 대통령님을 위해 술 한 잔을 들고자 한다. ‐

 

과거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문화역사적인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과거는 모두가 부정될 것이며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법은 죄형법정주의를 제창하는 것이며, 소급입법을 금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기준이라면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발전을 위해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전투수당 약 500달러에서 450달러를 사용한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지금의 기준이라 해도 북한 김일성이 자행한 수없는 데러와 침략에 대해 왜 한 마디 말을 못하는가. 소급입법을 해서라도 북에 동조한 인물들을 잡아넣어야 할 것 아닌가. 김일성에 대한 소급압법은 없고 전두환에게만 소급입법을 적용하는 이 시대를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커미션으로 주는 돈을 M16같은 무기로 주라고 하였다. 이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4.19때 학생들이 이승만을 향해 '대통령 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무릎을 끓은 사실이 있다면, 그 행동을 지금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 유신을 독재로 몰아붙이고 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붙였고, 전국적으로 유신헌법에 대한 찬성지지율이 90%가 넘게 나왔기 때문에 이를 선포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80%대를 기록한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90%를 넘겼다. 이게 독재일 것인가?

 

비록 유신헌법이, 민주국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헌법이라 할지라도 당시에는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은 위태로웠고, 또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추진하였던 경제발전의 성과가 나타나 그걸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국민들이 유신에 대해 90%라는 일방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인정할 수 있는가?

 

전두환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은 이념보다 경제에 더 민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되게 운영했으며, 무역수지를 흑자로 바꾼 점은 참으로 찬탄할 만한 국가경영이었다. 이 뛰어난 지도력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명박의 4대강 공사에 침을 튀기며 욕하는 자들이 똥물과 다름없던 한강을 지금과 같이 멋진 한강 고수부지로 바꾼 사람이 전두환이라는 점에 대해선 입을 닫고 함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두환은 처음부터 대통령 '단임제'를 스스로 주장하고, 그 약속을 지킨 분이다. 바로 이점은 위대한 민주주의자로서의 덕목과 귀감(龜鑑)이 될 것이다.

 

 독재자들은 평생 해먹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지, 전두환처럼 스스로 물러나려고 법을 정해서까지 약속하진 않는다는 점,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충분히 읽고 배웠을 줄 안다.


그리고 전두환 개인에 대한 비리와 부패는 '독재자'라는 점과 연관시킬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노무현도 640만 달러라는 비리가 있지 않은가. 반면 독재자라고 욕을 해대는 박정희 대통령은 비자금이 전혀 없었음도 충분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한때 민노당이 무려 27억이나 되는 돈을 반납하지 않고 떼먹은 사실이 있다. 노골적인 반국가 정당이 27억이나 되는 돈을 어디다 썼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검찰은 바른 조치들은 취하지 않고 오직 전두환의 비자금만 압박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반국가적인 행동이자 야만(野蠻)스러운 검찰일 것인가.

 

다만 아쉬운 점은, 전두환 시대에 핵실험 및 개발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1980년 12월 19일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핵개발을 주도했던 원자력 연구소를 한국핵연료개발공단과 강제로 통폐합시킨 뒤 명칭에서 '원자력'이라는 말을 빼버리고 '에너지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전두환은 핵을 포기하였고, 1983년 11월 당시 재처리 작업을 통해 추출했던 플루토늄은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 제출됐다.

 

1982년~1983년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 개발 계획을 극비리에 추진했고, 이는 일본과 미국 측 언론에 입수되어 보도됐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그런 정보를 입수해 계획 중지를 요구했으며, 1983년 11월에 전두환은 한국을 공식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에게 핵개발 계획 중지를 약속하게 되었다. 절통할 일이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서거로 혼란했던 경제를 잘 수습하는 한편 안보 면에 있어서도 대북 우위를 확보했으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더이상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하여 필자(筆者)는 문재인과 6공화국 7기 정권에 말하는 것이다.

 

“전두환만큼만 해 보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그 위대한 지도력과 북한을 뛰어넘은 역사의 위상을 배워보라. 전두환 시절은 어느 누구도 국가의 정책과 목표에 이의를 단 사람이 없었다. 국론은 한 곳으로 모이고, 응축된 교육의 힘이 작용하여 수많은 인재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갔으며, 민주시민의 의식은 높아졌고 거리는 깨끗했다. 어디 한번 문재인은 전두환만큼만 그렇게 해보라!”

 

민정기(閔正基·75)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이렇게 말한다.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이견(異見)이 있고 그분의 서술이 냉정한 관찰자의 증언(證言)이라 할 수 없다 해도, 그 해석과 평가는 국민 각자의, 역사의 몫이다.”

 

다음 시(詩)는 7년 전 쓴 필자(筆者)의 졸작(拙作)이다.

 

전두환 대통령님의 심경(心境)도 이와 같으리라 싶어 올린다. 모쪼록 건강하시기를, 모쪼록 백담사까지 부군(夫君)을 따라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같이 하셨던 이순자 여사님과 더불어 다복(多福)하시기를, 이 못난 전라도 사람은 호남 들판에 내리는 가을비에 젖어, 대한민국 제 12대 대통령을 바라본다.

고 등 어

 

/ 정 재 학

 

흔하다고 비웃어도 좋다.

 

흔한 것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독한 비린내에 고개 돌려도 좋다.

 

살다보면 묻히는 것이 비린내뿐이겠는가.

 

흔하여 가까이 사는 이웃으로

 

네 곁의 비린내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깊이 생각한 일이겠는가.

 

쉽게 죽는다고 비웃어도 좋다.

 

오래 살아 치욕을 받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조용히 삶을 접고

 

쉽게 떠나주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행복한 배려일 것인가.

 

비록 뜨거운 장작불 위에

 

목구멍 깊숙이 창살을 물고 있다 하여

 

뜨내기 잡어(雜魚) 취급하지 말라.

 

누구의 도움도

 

누구에 대한 원망도 바라지 않는

 

이 단호한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등 푸르게 살다간 이름으로 기억해 주지 않겠는가.

 

2017.10.31

 

10월의 마지막 날에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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