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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임이란 용어는 원래 정해진 임기를 다 마친 뒤에 다시 그 직위에 임용하지 않은다는 의미다.


전두환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온, 대한민국 현대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달라이 라마는 ‘욕심의 반대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이다’고 하였다. 전두환은 달라이 라마가 말한, 잠시 머무름에 만족한 행복한 위인(偉人)이었다.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는 것이 올바른 인간이다. 탐욕이 지나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우리는 삶의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보고 겪는다. 지나치게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게 넘치지 않게 산다는 것. 이것이 인간사 고통과 번민을 이겨내는 유일한 삶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재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권력욕) 다섯 가지 욕망을 오욕(五慾)이라고 칭하며 ‘차고 넘침’을 경계한다. 이러한 비록 욕심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탐하면 삼구(三垢)의 하나. 또는 삼독(三毒)의 하나로, 모두 몸을 망치는 독(毒)이 되는 것들이다.


따라서 먹고 싶고 자고 싶고 누리고 싶고 번식하고픈 욕망을 견디고 참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기에 우리는 ‘탐하되 지나치지 않음’을 수양의 첫째 덕목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옛 선인들이 말하기를 오욕(五慾) 중에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권력욕이라 하였다.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식욕(食慾), 수면욕을 참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뜻이다.


권력을 탐하다가 끝내 독재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면, 권력욕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독재자들이 그 교훈을 알면서도,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권력을 내려놓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권력만큼 달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천하가 내 손에 있고, 모두가 발밑에 있는데, 스스럼없이 내려놓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따라서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독재자일 수 없다.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혹 통치 과정에서 강압과 독선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전두환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고,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소인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전두환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솔직한 사람이었고, 비록 직선적이며 행동적이며 단순해 보이되, 자기가 행한 행동에 구차한 변명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언어 구사력도 단순명확하였다. 그는 긴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번 내린 결정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견해는 필자(筆者)뿐만이 아니다. 경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나 지난 현대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입을 모은다. ‘조금은 서툴게 보이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자였다’고.

그렇다면 이 견해를 밑받침하기 위해, 전두환 시대 이후(以後)를 통시적으로 살펴보자.


전두환은 헌법을 개정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선출하는 간선제 대통령으로서 제5공화국을 열었다. 소위 체육관 대통령이라고 비아냥거리던 그 간선제 대통령이었다. 1981년 3월부터 1988년 2월까지의 시기가 전두환 대통령이 이끌던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당시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정하고 있었다.


다음 노태우의 제6공화국 1기는 1988년 2월부터 1993년 2월까지의 시기이다. 1987년 6 · 29 민주화 선언으로 9차 개헌을 실시하여 직접 선거에 의해 노태우가 5년 단임제의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노태우 이후로는 헌법 개정을 통한 정치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각각 기수내지는 별칭으로 구분을 한다.


즉, 노태우 정부를 6공 1기라 한다면, 김영삼 정부는 6공 2기 또는 문민의 정부라 하였고, 김대중 정부는 6공 3기 또는 국민의 정부라 불렀다. 200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공식 출범한 정부 역시 법적으로는 제6공화국 4기 정부이다. 이명박 정부는 제6공화국 5기 정부로서 실용정부라고도 하나, 정확한 별칭은 없다. 박근혜 정부 제6공화국 6기 정부였고, 현재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부 제6공화국 7기 정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두환 이후 진행되어온 대한민국 정부의 통시적 과정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전두환은 제9차 헌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제6공화국 1기부터 7기까지를 열어준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단임 실천은 전두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필자(筆者)는 확신한다. 그가 만약 일반의 독재자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정권 연장을 꾀했을 것이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에를 들면 군을 동원해서라도 정권을 존속시켰을 것이다.


국가의 마지막 보루는 국군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당시 60만 국군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확실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두환의 명령 하나에 60만 국군이 계엄령을 통해 등장했다면, 그깟 한 줌도 안 되는 민주화 세력쯤은 간단히 처리했을 것이다.


김영삼과 김대중 정도는 간단히 없앨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가택연금이나 정치적 봉금(封禁)은 시켰을지언정 생명을 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군을 동원하지 않았다. 후일 김대중은 그의 재임기간 가끔씩 전두환을 청와대로 불러 환담을 나누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김영삼은 사형명령을 내렸으나, 김대중은 그러지 아니 하였다. 어쩌면 김대중은 전두환의 인품을 믿어준 유일한 대통령이었을지 모른다.


에피쿠르스는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욕심을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열린다’고 하였다.


전두환은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온 위인(偉人)이었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과감하게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 7년 단임을 분명하게 실천한 사람으로서 그는 군부통치의 탈을 과감하게 벗은 우리의 대통령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단순솔직한 무인(武人)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정말 대단한 결단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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