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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한의사들의 신앙 간증 시간, MBN <황금알>

전문가 출연이 방송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아

6월 30일 MBN <황금알> 프로그램에서는 한의학의 효과를 다뤘다. 한의학의 효과가 의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는지를 토론하는 듯 했으나 결국은 한의사들의 신앙 간증 집회를 보는 것 같았다.

한의사들이 자신들이 환자를 치료한 무용담을 늘어놓았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은 학계에서 의학적인 효과를 판별하는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치료행위가 실제로 병이 치유된 원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방 치료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어도 병이 저절로 나았을 수도 있고, 위약효과일 수도 있고, 한의사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병원에서 다른 치료를 받아서 나았을 수도 있다.

침술의 효과를 열 배나 부풀린 거짓말

방송에 출연한 정채빈 한의사는 거짓말을 했고 큼지막한 자막이 입혀졌다. 2003년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300여 가지가 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침술의 효과를 인정한 질환은 300여 가지가 아니라 28가지로 열 배나 뻥튀기 했는데 방송에서는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한의사들에게 보고서에서 인정한 질병 외에는 치료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한의원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30가지 정도의 질환은 침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고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는 의미일까?

WHO의 엉터리 보고서

대체의학 분야에 1000편 가량의 논문을 발표한 권위자인 에드자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 박사와 과학저술가인 사이먼 싱(Simon Singh) 박사는 공동 집필한 저서 『치료냐 사기냐 : 대체의학에 관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Trick or Treatment: The Undeniable Facts about Alternative Medicine(』에서 세계보건기구 보고서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비판했다.

침술의 효과에 대해 의학계에서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보건기구의 침술 위원회(acupuncture panel)에는 침술에 비판적인 사람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구성이었다.

또, 보고서의 초안과 개정안을 작성한 사람은 베이징 대학 중서의결합연구소(Institute of Integrated Medicines in Beijing)의 명예소장인 주판지에(Zhu-Fan Xie, 谢竹藩)로 침술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이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주로 중국의 임상 시험에 많이 의존했는데 중국의 침술 임상 시험은 신뢰할만한 수준이 못 된다. 또 인용한 서양의 임상 시험들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는 학계의 의견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 아니라 침술을 신봉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침술을 지지하는 논문들을 주워 모은 것에 불과하다.

의심스러운 중국의 임상시험 논문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한의학(중의학) 논문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1998년 영국 대체의학 연구 협의회(Research Council for Complementary Medicine)의 과학자들은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지에서 수행된 연구는 거의 100%가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고, 특히 중국에서는 효과가 없다고 결론내리는 연구가 하나도 없는 비정상적 상황을 “Do certain countries produce only positive results? A systematic review of controlled trials.”라는 논문을 통해 지적했다.

2007년 스위스와 영국의 과학자들은 한약의 효과에 대한 임상시험 논문들의 문제점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들은 허술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는 보고만 계속되는 발표편향 현상을 분석했는데 특히 중국 논문들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현대의학의 치료법들은 과학적 개연성을 갖추고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해 통과했을 때 사용한다. 효과가 없으면 사용하기 않으면 그만이다. 반면 과학적 개연성과 효능에 대한 근거가 없이 돈을 받고 진료하고 있던 한방 치료법들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중국의 중의사들이나 한국의 한의사들이나 자신들이 이미 환자들한테 돈을 받고 진료하던 방법이 엄밀하게 평가를 해보니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들 그 사실을 발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하던 일은 사기가 되고 환자들은 치료비를 돌려달라고 달려들 텐데 쉽지 않은 일이다. 부정적인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묻혀버리거나 데이터가 조작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실상을 왜곡하는 방송

실제 학계의 상황은 한의학 치료에 위약효과 이상의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방송에서 한의사들이 논문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치료행위가 학계에서 인정받은 것처럼 주장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들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서양 국가들에서 침술이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의료기관에서 통증이나 항암치료의 부작용 완화 등 소수의 질환에서만 보조적인 요법 정도로 활용될 뿐이다.

침술 마취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가정의학과 전문의

방송에 출연한 박용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90년대 초 중국에 가서 침으로 마취시킨 채로 수술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때때로 사망까지 이르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마취를 마취제를 쓰지 않고 침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20년이 지나도록 침술 마취는 널리 활용되지 못하고 소수의 목격담만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침술 마취가 의학계로 퍼져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이 2006년 영국 BBC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에 방송되었다. 상하이의 한 병원에서 환자를 침술로 마취시키고 심장 수술을 진행하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을 수술할 수 있게 한 마취효과의 근원은 함께 사용한 진정제, 국소마취제, 진통제 등 약물이었고 침술은 그저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고, 방송의 진행자인 Kathy Sykes 교수도 그 점을 인정했다.

기 순환? 발견하면 노벨상 타고도 남아

방송에서 한의사들은 침 뜸, 부황 같은 시술이 인체의 기 순환을 돕고 인체의 치유력을 끌어올린다고 주장들을 한다.
 



그런데 수십억 광년 떨어진 거리를 여행해 온 별빛을 감지하고,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입자의 운동과 힘을 관찰하는 현대 과학은 이상하게도 기나 경락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논문도 없다. 영어로 발표된 한의학의 효과를 다루는 논문들에서는 기의 존재를 거론하지조차 않는다.

기를 발견하면 의학계는 물론이고 물리학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노벨상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기가 막혀서 병이 들고, 경락을 자극해 기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병을 고친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소리다.

“근거가 없다”는 말이 미지근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침을 놓으면 몸 안에 병을 일으키는 악귀가 깜짝 놀라 달아나 병이 낫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뜸을 뜨면 몸 안에 치유의 요정이 깨어나 병이 치료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부황을 뜨면 조상님의 영혼이 소환돼 병을 고쳐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런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 황당하게 들리는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가? 한의학적 치료가 기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주장이나 위에 예로 든 황당한 문장들이나 근거가 없고, 과학적 개연성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완전히 동일하다.

기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덜 황당할 이유는 없다. 사람들의 귀에 경락과 기라는 개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리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그것을 자주 들어왔고 주위에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 조금의 근거라도 있어서가 아니다.

잉카, 아즈텍, 마야, 바이킹 등 여러 문명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 화를 막으려는 문화가 존재했다.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면 나쁜 일을 막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그 사람들과 토론을 한다면 그들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현대의 관점에서는 그저 미개한 생각일 뿐이다. 한의학적 인체관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미래 사람들의 관점에는 똑같이 비춰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의학도 어차피 불완전하고 뒤집힐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항생제가 세균을 죽이고, 진통제가 통증을 억제하는 등의 사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뒤바뀔 믿음이 아니다. 실험을 통해 인과관계를 밝히고 작용원리가 규명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기가 어쩌네, 풍이 들었네 하는 옛날 책에 적힌 고대 중국인들에서 나온 생각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근거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과학계에서는 쓸모없는 개념으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방송에서 기가 어쩌고 서로들 떠들고 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은 마치 벌거숭이 임금님의 의상 디자인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에서 아무도 벌거숭이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의 질은 출연한 전문가들이 아닌 PD와 작가들의 수준에 좌우

<황금알> 같은 방송은 한의사 외에도 의사 등 여러 전문가들이 나오기 때문에 대중들의 눈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준 높은 방송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송도 일반 대중들과 별다를 바 없는 수준의 PD와 작가들의 머리로 틀을 짜놓고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줄 사람들을 불러다 앉혀놓은 쇼에 더 가깝다.

한의사들이 거짓말을 하고 헛소리를 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지나치게 미약한 이의제기만 하고 넘어가지 않는가. 이날 방송에는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유용상 광산수완미래아동병원 원장이 출연해 구색을 맞추는 듯 했으나 충분한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중간부터는 녹화에 완전히 배제됐다.

비록 우리나라는 의사와 한의사라는 이원화된 의료 체계와 왜곡되고 편향된 방송과 언론 보도로 인해 국민들이 한의학을 의학과 대등한 위치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잘못된 시각이다.

중국 문화권 밖에서는 기이하게 들릴 소리들을 방송에 전문가랍시고 나와서 떠들어댄다. 유독 우리나라만 어리석은 관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한심한 방송을 제작하는 방송인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한의사라는 구시대적인 제도를 방치하고 있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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