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의견서 [담당재판부 : 제4-2형사부(나)] 사 건 2018노4088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등 피고인 변희재 외 3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합니다.
- 다 음 - 최근 피고인 측이 제출한 사실조회 신청 4건에 대하여, 재판부는 2020. 6. 18. 공판에서 “사실조회 채부(採否)는 검사의 의견을 들어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이에 검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신속한 의견 제출이 어렵다는 사정을 들었고, 재판부는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결국 피고인 측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신청하였던 사실조회들이 다음 공판이 열리는 9월 10일 이후로 사실상 무기한 보류되고, 실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른 형사재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같은 상황에 저희 피고인 측은 과연 이 사건 재판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변호인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합니다.
Ⅰ. 사실조회 채부(採否)에 검사의 의견을 청취하겠다는 방침에 대하여 피고인 측이 최근 제출한 사실조회 신청 4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2020. 6. 15. 신청한 박영수 특검팀에 대한 포렌식 자료요청(L자 패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3건은 모두 검찰 측과 하등 관계없는 이동통신사와 카드사에 대한 자료 요청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조회 신청 3건에서 요청하는 자료는 검찰이 소유 또는 점유하고 있어 검사에게 협조를 요할 필요가 있거나, 검찰 측에 일정한 권한이 있는 자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실조회 채부에 검사의 의견을 듣겠다는 재판부의 방침은 과연 어떠한 취지에서 나온 것인지, 그 바탕에 깔린 논리나 명분은 무엇인지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측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Ⅱ.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 무기대등의 원칙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감독은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언제든지 선수를 적시에 교체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심판의 허락을 구하면 충분한 것이지, 만일 심판이 선수교체 승낙을 마냥 미룬 채 느닷없이 상대팀 감독에게 달려가 “저 팀에서 지금 선수를 교체하려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의견을 구한다면 아마도 그 심판은 희대의 ‘편파심판’으로 이름을 남길 것입니다. 이런 편파적인 심판이 존재할 경우 흔히들 그 경기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형사재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본질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은 재판부께서도 충분히 공감하시는 문제일 것입니다. 검사는 국가기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관련자를 소환 신문하고 압수·수색·구속하는 등 막강한 수사권을 동원하여 수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공소를 제기합니다. 검사가 획득하는 정보는 질적·양적으로 피고인보다 월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인은 모든 면에서 검사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어 재판에서 대등하게 맞서기란 어렵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대원칙을 제시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부나마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단순히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에서는 무기대등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검찰과 피고인이 서로 대등한 수준의 수단을 갖고 진실을 다퉈 죄의 유무에 대한 판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검사의 강력한 수사권에 맞서 피고인이 그나마 사용할 대등한 수단이란 것은 현실적으로 ‘사실조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법원도 사실조회 제도의 중요성을 판결에 반영한 바 있습니다. 2019. 5. 30. 선고(2018도19051)에서 “피고인 측이 신청한 사실조회를 원심이 모두 기각하여 실질적인 반론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며 원심판결을 돌려보내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비록 이 사건과 내용이 다른 사건이긴 하지만, 대법원은 사실조회라는 제도를 검찰 측 주장을 탄핵하는 수단 내지 피고인 측의 반론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으로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실조회는 피고인의 방어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수단입니다. 검찰은 포렌식 분석까지 동원하여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데, 이에 맞서는 피고인이 그나마 있는 사실조회라는 무기라도 쓰라고 재판부가 독려해도 부족할 판에 도리어 무기를 일단 내려놓도록 한 뒤 검사의 의견을 듣고 나서 그 무기를 써도 되는지 결정하겠다고 한다면, 상식을 가진 국민 누구나 공정한 재판이 맞는지 의문을 가질 거라 판단됩니다. Ⅲ.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실질적 이유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모든 피고인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 3항)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을 보자면 지난 7차 공판이 무려 여섯 달 만에 열렸으며, 8차 공판은 석 달 뒤에 열리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공판 일정만 봐도 신속한 재판을 받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이제는 피고인 측이 그나마 쓸 수 있는 방어수단인 ‘사실조회’마저 검사의 의견을 들은 뒤 채부를 결정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기한 지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피고인 측이 제출한 사실조회 4건 중에는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 제출명령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카드(구 하나SK카드)가 보관하고 있는 단말기할부매매계약서 사본입니다. 이 사건 태블릿PC의 단말기할부매매계약서는 2012년 6월 22일 계약이 체결되어 36개월 할부가 끝난 2015년 6월경 계약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카드사 내부 방침에 따라 2020년 6월까지 계약서를 보존하게끔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저희 피고인 측은 지난 5월 29일 ㈜하나카드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서를 재판부께 드렸습니다. 재판부께서 검사의 의견이 필요하다는 이유와 같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여러 명분으로 한 달 가까이 결정을 미루고 계시는 동안 피고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단말기할부매매계약서가 그 사이 폐기된다면, 추후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궁금합니다. Ⅳ. 결론 최근 피고인 측이 신청한 사실조회 가운데 3건은 검사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SK텔레콤에 대한 사실조회(2020. 5. 27), 하나카드에 대한 사실조회(2020. 5. 28), 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에 대한 사실조회(2020. 6. 1)는 검찰 측과 무관한 민간기업이 갖고 있는 자료를 대상으로 합니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조회 채부에 검사의 의견을 구한다는 것은, 그 이유나 명분에서 논리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방침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피고인이 갖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어 수단인 사실조회마저 검사의 주장과 스케줄에 종속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피고인 측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사례일 수 있으며, 형사소송법에서 제시하는 무기대등의 원칙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판 일정이 매우 더디게 잡혀있는 가운데 피고인의 방어 수단인 사실조회까지 검사의 의견을 듣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기한 보류되는 실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의 구현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외람되지만 재판부께 요청드립니다. 검사의 의견을 듣고 나서 사실조회 채부를 결정하신다는 방침을 다시 한 번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검사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신다면 가급적 6월 안에 검사가 조속히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일정을 독촉해주시고, 검사가 마냥 시간을 지체한다면 늦어도 7월 중순 전에는 검사의 의견 청취를 생략하고 채부 결정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와는 별도로 앞서 말씀드린 ㈜하나카드가 보관하고 있는 단말기할부매매계약서가 이달 안에 폐기될 가능성이 있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시어 ㈜하나카드에 대한 제출 명령만큼은 당장 실행이 가능하도록 방침을 일부 수정해주시거나, 최소한 단말기할부매매계약서가 폐기되지 않도록 재판부께서 이달 안에 ㈜하나카드에 직접 관련 조치를 취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2020. 6. . 피고인들의 변호인 변호사 이 동 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형사부(나) 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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