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연구소 정안기 객원연구원(전 고려대 경제학과 연구교수)이 일제시대 조선인 학도지원병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며 ‘강제동원설’을 반박하고 나섰다.
(관련 기사 : 일제시대 학도지원병, 기억과 망각의 정치사)
정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이승만TV' 위기 한국의 근원 : 반일 종족주의 시리즈 9 - 학도지원병, 기억과 망각의 정치사]를 통해 조선인 학도병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했다. 앞서 2015년, 그는 고려대 ‘동아시아 경제사’ 강의에서 “그 시대에는 모두가 친일파였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가 당시 학생들과 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 당하기도 했다.
학도지원병제, 조선의 지원‧협력 없이는 불가능
이날 정안기 객원연구원은 조선인 학도지원병제를 ‘지원을 가장한 강제동원’으로 결론내린 역사학자 강덕상 씨의 연구결과와 이를 그대로 따르는 국내 학계를 향해 “학도지원이 일제의 강제동원이었을까”라고 반문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먼저 정 연구원은 당시 조선인 학도지원병을 선발했던 구체적인 과정부터 제시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43년 10월 20일 일본 육군상은 관내에 전문학교 또는 대학에 재학중이던 법문 계열의 조선인 학도를 대상으로 학도지원병을 모집한다는 ‘육군 특별지원병 임시 채용 규칙’을 공포했다.
이에 1943년 10월 25일부터 11월 20일까지 지원자들의 접수가 실시됐고, 같은해 12월 11일부터 20일까지 징병검사를 거쳐 입영 학도가 선발됐다. 입영 학도는 일주일에 걸친 예비 군무교육을 거쳐 1944년 1월 20일 관내 일본군에 입영했다.
정 연구원은 조선인 학도지원병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강제성이 없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일본인과 달리 조선인에 대한 학도지원병제는 법제적인 강제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특별지원’이라는 형식을 빌려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정부 입장에서 (조선인) 학도지원병제 실시는 동일한 제국 신민에 대한 국민의무의 차별(또는 역차별)을 해소‧회피하는 고육지책의 일환”이라며 “자발적인 지원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인(조선)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협력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제도였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정 연구원은 조선인 학도병 인원 수와 관련한 강덕상 씨의 부실한 연구도 비판했다. 정 연구원은 “종래의 연구(강덕상)와 보고서는 학도지원 적격자 6203명 중 4385명이 일본군에 입대했다고 주장해왔다”며 “하지만 이는 학도지원병의 지원과 선발에 관한 실상을 총제적으로 누락한 극히 부실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입영학도가 4385명이었다는 건 산출근거가 결여된 허구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수치는 학도지원병 출신인 김상현이라는 사람이 1945년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 근처에서 소각‧파기중에 있던 관련 문건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억의 숫자’를 훗날 무비판적으로 역사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정 연구원은 “1944년 12월 일본정부 내각 관방이 생산한 데이터에 따르면, 학도지원자는 공식 4122명, 비공식 488명으로 모두 합쳐 4610명”이라며 “지원자들의 적성검사 수검율은 약 91%에 달했고, 이 가운데 적성검사 합격자는 현역병 2736명과 보충병 381명으로, 합계 3117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44년 1월 20일, 질병 및 기타 사유를 제외한 3050명이 입영했다”며 “따라서 실제 학도지원은 지원회피자 1491명, 적성검사 회피자 393명, 적성검사 불합격자 1110명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지원자'를 '입영자'로 간주했던 부실한 학도병 연구
정안기 객원연구원은 학도병 선발체계와 관련한 자신의 연구결과를 강덕상 씨의 연구와 비교하는 표를 제시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는 “학도지원병의 지원과 선발은 적격자-지원자-적성검사-합격자-군무교육-입영자 (등 여러가지 절차를 거쳐, 학도병들이) 일본‧조선‧만주‧중국으로 입영하는 프로세스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강덕상의 연구는 적격자와 지원자 부분만 추계했다”며 “더욱 터무니없는 것은 바로 이 지원자를 ‘입영자’로 간주했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강덕산의 연구는 (학도병) 지원자를 4385명으로 추계하고 있지만, 내(정안기) 추계의 경우 4122명”이라며 “흥미로운 사실은 강덕상의 연구에서 제시한 ‘9월 졸업 미취업자’ 수와, 내(정안기)가 집계한 ‘소계’가 서로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강덕상 씨가 제시하는 추계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오류의 원인에 대해 “재일 유학생 지원자의 과소평가, 재만 및 재중 유학생 지원자의 누락, 9월 졸업 미취업생의 중복 계산, 비공식 지원자를 누락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학도지원병제의 실상을 보면 적격자 지원율 73.4%, 지원자 수급율 91.5%, 입영율 97.9%를 기록했다”며 “지원자를 곧바로 입영자로 간주하는 해석은 참으로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접수기한을 넘긴 비공식 (조선인 학도병) 열성지원자가 존재했고, (반면에) 적성검사 기피자도 존재했다”고 역설했다.
정 연구원은 “당시 경성대 출신으로 지원을 거부하고 학도징용을 자원했던 서명원 씨는 ‘1차 신체검사를 한 뒤, 2차에 빠졌기 때문에 마감일을 넘길 수 있었다, 마감일을 넘기고 징용을 가면 그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이는) 학도지원병제를 단순히 ‘지원을 가장한 강제성’으로 단정할 수 없는, 학도지원병 개개인들의 다양한 욕망과 분별력있는 이기심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인 학도병 10명 중 6명은 일본군 장교 꿈꿨다
정안기 객원연구원은 “입영 이후 초병교육을 마친 (조선인) 학도지원병에게는 일본군 하사관 혹은 초급 장교로 입신할 수 있는 간부후보 지원이라는 특혜가 주어졌는데, 이들에게 일본군 장교가 된다는 건 ‘하늘의 별’과 같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도지원은 군인관료로 변신해서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입신출세의 지름길이었다”며 “1943년 당시 학도지원은 한국 사회에선 ‘천재일우의 기회’로 회자됐다”고 전했다. 그의 집계에 따르면, 이 시기 간부후보생 지원자는 입영학도 3050명 중 1869명으로 61.3%라는 높은 지원율을 기록했다.
당시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에 대해서는 “주로 1920년을 전후로 출생한 사람들로, 2500만 조선인 가운데 당대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의 행운아, 수혜자들”이라며 “이들은 훗날 1960년~1980년대를 거쳐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 유력자층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언론인 장준하, 고려대 총장 김준엽, 당시 야당 정치인 이철승, 추기경 김수환,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방송작가 한운사 등을 꼽았다.
정 연구원은 “(해방 이후) 이들은 일본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민족투사의 면모만을 강조하는 기억만을 재생산하고 사회화시켰다”며 “이들의 기억과 망각의 정치성은 1980년대 민족주의 역사학과 야합하면서 ‘반일종족주의 역사관’의 형성과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아울러 “이들 학도지원병은 일제의 기만과 선동에 넘어간 그런 바보 천치도 아니었지만,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강제동원의 피해자, 또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했던 민족투사는 더더욱 아니었다”며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의 적나라한 기억과 망각의 정치성은 해방 이후 반일종족주의와 영합하면서 만들어진 허위의식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터무니없는 기억과 망각은, 정부가 나서 이들의 학도지원을 독립운동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역사정책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이라며 “학도지원병 출신자들은 오늘날 공화증(空話症,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어 말하는 병적인 증세)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참담한 정신문화와 반일 강박관념의 정신세계를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라고 덧붙였다.
다음기사 : [이승만TV 대한민국 창군의 진실②] 일본 육군특별지원병제에 몰려든 조선인, 경쟁률 49 대 1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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