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맑으나 파고(波高)는 높다’ (원제 : '이웃 나라에서의 발자취, 서울 거주 35 년 일본인 기자가 따라간 일한역사사건부(隣国への足跡 ソウル在住35年日本人記者が追った日 歴史事件簿) [ 목 차 ] 한국어판 序文 …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01_망국(亡國)의 미스터리_수수께끼의 황제 위임장 ‘잡상인’도 정보원(情報源)이다 굴러 들어온 황제의 위임장 청일전쟁은 ‘조선전쟁’이었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을 규탄 황제 위임장의 진위를 밝힌다 밀사사건에 격노한 이토 히로부미 02_돌아온 러시아 함대_러일전쟁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동서냉전은 서울올림픽으로 막이 내렸다 당당하게 100주년을 위령(慰靈)하는 러시아 개전 전야(前夜) 러시아 함장은 일본 요정에 있었다 전후 첫 일본함대는 부산으로 깨트려져 창고에서 잠자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비석 성역(聖域)이 '언덕 위의 구름' 현장으로 03_멀리서 독도를 바라보다_누가 저 섬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나? 발틱함대는 독도 앞바다에서 괴멸 갈매기는 ‘우르릉 우르릉’ 하고 운다 독도 영유와 한국합병은 관계가 없다 ‘우산(于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 ‘쓰시마도 한국 땅’이라는 대일(對日) 보복 심리 독도수비대 대일 전과(戰果)의 허실 독도의 강치는 왜 절멸했는가? 04_회화나무는 남았다_민비(閔妃) 암살사건의 통한(痛恨) 고도(古都) 서울의 외교가(外交街) 정동(貞洞) 한국의 ‘로쿠메이칸(鹿鳴館)’에서 암약한 미스 손탁 ‘북의 위협’의 뿌리와 러시아에 대한 불안 일본 외교의 미숙함을 드러낸 왕비 참살(慘殺) 경복궁 한쪽 모서리에서 사라진 참극의 그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비난했다 ‘일본영사관의 폭주(暴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슈 군벌(長州軍閥)에 의한 한국 지배의 인과(因果) 05_일본은 한국에 예(禮)를 다했는가?_히로시마와 한국의 기연(奇緣) 민비 암살사건에 가담한 한국인 망명자에 대한 집요한 보복 조선 왕족도 히로시마에서 폭사(爆死)했다 일본 패전의 날에 경성에서 거행된 장의(葬儀) 일본의 명예를 지킨 일본인 무관(武官)의 자결 파헤쳐진 재한(在韓) 피폭자 문제 히로시마의 밤에 남은 불가사의한 ‘한국’ 06_이조잔영(李朝殘影)_한국의 흙이 된 일본 황녀(皇女) 쇼와(昭和) 천황과 함께 서거한 이방자 비(妃) 한일 합동 장례식에 황족도 참석 ‘우리의 왕비’가 되어 낙선재에는 역사의 흔적이 없다 “앞으로는 내가 싸운다” 일본 여성의 헌신에 관해 이방자 비를 뒷바라지한 한국 여성 07_옛 총독부 청사는 왜 해체되었는가?_‘아리랑’과 ‘감격시대’가 말해주는 것 고궁 파괴에 이의를 제기했던 일본인 ‘아리랑’에 새겨진 한일사(韓日史) 고속철도 ‘아리랑’은 환상이었다! 영화 ‘아리랑’의 필름은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인 건조물이 정부에 의해 파괴되다 한국인에게도 ‘희망의 청춘’이 있었다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의 원류는 한국인가? 08_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한국인_한운사(韓雲史)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 조선학도 특별 지원병은 과감하게 호소했다 “안녕, 일본이여! 나는 용서한다” 그 시절, 좋은 일본인도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속죄의식 ‘몰랐던 과거’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 창씨개명에 관한 어떤 오해 소년들은 전투기 ‘하야부사’에 환호했다 09_폭발하는 민족감정_고난의 귀환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와 명저 '조선 종전의 기록' ‘종전(終戰)’의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혁명이다, 혁명이다!” 표변하는 한국인들 느닷없이 북에서 밀고 내려온 전쟁 저주 받은 민족, 그 사멸(死滅)의 지옥도(地獄圖) 반드시 일본은 다시 일어난다! 10_그 아침의 경복궁은 은세계(銀世界)였다_잔류를 지시 받은 일본인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의 회상 박물관 사수(死守), 그리고 성조기 신생 국립박물관은 눈이 쌓인 가운데 오픈했다 한국에서 보내져온 따뜻한 조의(弔意) 일본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일 혼혈아 북한군과 한국군을 경험한 잔류 일본인 11_6·25전쟁이 시작되었다_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가 저지른 죄 패전 후의 일본에서도 있었던 보복 피해 6·25전쟁의 ‘쇠 금(金)’ ‘실 사(絲)’ 붐 전쟁 특수로 활약한 ‘소년 아파치’ 한반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일본은 제2의 전쟁터가 되었다 저명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북한 환상 김일성을 옹호한 소설 '북의 시인' 12_‘在日 한국인 조국 귀환’의 비극_북한 환상이 안겨준 것 소년 시절 추억의 재일 한국인 ‘지상의 낙원’은 지옥이었다 사회주의 환상과 속죄의식의 함정 누가 그들을 ‘지옥’으로 보냈는가? 영화 '큐보라가 있는 거리'의 시대적 한계 환상으로부터의 탈출 13_흉악 살인범이 민족적 영웅이 되었다_극장형(劇場型) 범죄, 김희로(金嬉老) 사건의 전말 단순 살인사건인가, 한일 민족문제인가? 항일 애국 테러리스트의 ‘귀국’ ‘행복한 생활’에서 ‘방랑 생활’로 라이플총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 “그 자는 예사 인간이 아니다!” 서재나 다름없는 독방에서 초밥까지 먹었다 옥중 결혼 아내와의 기연(奇緣) 타락한 영웅의 일본에 대한 망향 14_김현희(金賢姬)는 왜 ‘마유미’가 되었나?_한국과 일본의 고생은 지정학적인 숙명 김현희의 일본어는 완벽했다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후퇴했다 모략 ‘김현희 가짜설’에 대한 반격 KAL기 사건으로 발각된 일본인 납치사건 국민의 안전보다 국가의 안전? 김대중 납치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15_김일성을 이긴 박정희_일본이 한반도에 남긴 유산 한국과 일본은 왜 오래 국교 회복을 하지 못했나? “좋은 일도 했다”는 것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교정상화에 반대한 ‘신(新) 한국인’들 한국에 감사하자? 항일 영웅 전설이 북의 권력을 지탱했다 ‘친일’과 ‘반일’이 낳은 역설 출판자의 後記 …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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