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적 착취

“상아탑이라는 곳이 훌륭한 도덕적 과정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그저 전문가적 책임감과 기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17.11.15 11:55:45



※ 아래 글은 호주 울롱공 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  사회과학과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 교수의 논문 Academic exploitation을 원 저자의 허락을 받아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번역해 공개하는 것이다. 

브라이언 마틴 교수는 학계의 여러 부정행위 문제가 학계의 권력구조, 위계질서 등의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학자다. 표절도 결국 착취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기도 하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앞으로 관계 논문들도 차례차례 번역해 공개할 예정이다. 

아래 글은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 앤 베이커(C. M. Ann Baker), 클라이드 맨웰(Clyde Manwell), 세드릭 퓨(Cedric Pugh) (편집인들)이 출판한 ‘지적 탄압 : ‘호주 사례의 역사들, 분석과 응답(Intellectual Suppression: Australian Case Histories, Analysis and Responses)’ (Sydney: Angus & Robertson, 1986), pp. 59-62에서 발췌한 것이다.  일부 소제목과 사진, 캡션은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덧붙였다.



학적 착취
(Academic exploitation)


학문에 있어서 연구자가 수행한 연구에 대한 ‘공헌(credit)’을 인정해주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학계에서의 공헌인정은 연구자가 직업을 구하거나 승진하거나 연구비를 받거나 명망을 얻는 데 있어서 기준과도 같다. 따라서, 독창적 아이디어들은 물론이거니와, 공들여 얻어낸 실험 결과와 자료 수집,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주장들과 관련된 업적이 학계에서는 철저한 보호 대상이라는 것은 놀라울 게 없는 일이다.

표절은 타인의 학적 업적을 훔치는 가장 노골적인 사례다. 표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도 학계에 더 만연한 상황이다.[1] 또한 표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정행위로서 연구결과 날조(faking of result)’가 있는데, 이는 실제로 진행되지도 않은 연구에 대해서 자신의 업적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날조 행위 역시 알려진 것에 비해 더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2]

여기서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개념인 ‘학적 착취(academic exploitation)’에 대해서 설명해보자면, 바로 종속적 지위에 있는 연구자의 업적을 가로채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종속적 지위의 연구자로부터 그 공헌을 부당하게 받아낼 수 있는 방법으로써 연구를 진행토록 압박하는 것도 학적 착취의 변종이라고 하겠다. 

착취자는 자신의 우월한 권력을 이용해서 공헌에 대한 인정을 불공정하게 배분하고 또 그것이 유지되도록 한다. 착취자는 피착취자를 굴복시키기 위해 암시적 또는 명시적인 보복 위협을 가할 수도 있는데, 피착취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판이 남도록 만드는 수법도 여기 포함된다. 

착취는 상아탑의 추잡한 측면들 중에 하나이지만, 상아탑에서는 이에 대해 거의 논의를 하지 않거나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적 착취의 전형적 사례들

다음은 학적 착취의 일부 전형적 사례들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최근 10년 동안 필자가 구두(口頭)로 직접 듣거나 또는 문서제보로 접했던 사례들 중 일부다. 관련된 모든 이들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이름 및 일부 내용들을 변경했음을 밝혀둔다.

첫 번째 사례

최근 박사학위를 취득한 폴(Paul)은 자신의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지도교수와 함께 몇 편의 논문들을 작성했다. 그들은 논문 중 한편을 다른 한 교수와 학과장에게 제출해서 논평을 부탁했다. 논문을 검토한 그 교수는 해당 논문에 단지 한 문장을 추가했고, 세 번째 저자로 자신을 그 논문에 등재시켰다.

두 번째 사례

윙(Wing)은 제3세계 출신의 학생으로 호주의 한 명문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윙의 지도교수인 윌리엄스(Williams) 박사는 윙의 연구 관심사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윙의 연구 관심사와는 다른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호주로 그를 초청했었다. 그 프로젝트들은 그 자체로 논문 과제로서 부적합했으며 사실은 윌리엄스 박사의 개인적 관심사에 가까웠다. 윌리엄스 박사의 이 프로젝트들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윙이 파악했을 때, 윌리엄스 박사는 윙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대립했다. 이후로 윌리엄스 박사는 윙에게 매우 적대적으로 변했으며, 윙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혔다. 이를테면 그는 학과장과 학장에게 윙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으며, 윙의 연구를 방해하기도 했다. 또 윙의 논문 초안을 제대로 읽어주지도 않았으며 포스트닥 과정을 위한 윙의 신청서에 성의 없는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큰 어려움과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거친 후에, 윙은 같은 과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세 번째 사례

조안(Joan)은 호주 소재의 한 소규모 3차(고등) 교육기관의 영문학과 학과장인 스미스(Smith) 박사의 조교로 일했다. 스미스 박사는 자신의 전공 분야 최신 문헌들을 직접 성의 있게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조안에게 해당 문헌들을 읽게 한 후에 줄거리를 요약해서 자신에게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스미스 박사가 가끔 논문을 작성할 경우에는 조안이 긴 시간을 소모해서 그의 논문을 검토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자료를 최신 자료로 교체해야만 했다. 심지어 조안은 해당 논문의 참고문헌도 대신 찾아야 했었고, 논문의 일부를 대신 써준 경우도 있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떤 공헌인정도 받지 못했다. 

스미스 박사는 이 젊은 여성 조교와 함께 있는 것을 즐겼고, 이런 빌미를 만들기 위해 그녀와 긴 시간 동안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녀에서 사생활에 대해 질문하곤 했으며, 애정을 표현하는 신체적 접촉도 했다. 결국에는 성관계를 제안하는 수준까지 갔다. 결국 조안은 더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스미스 박사는 수년간 많은 여성 조교들과 학생들을 비슷한 방법으로 착취했다. 

네 번째 사례

엘리자베스(Elizabeth)는 호주 유명 대학교 화학과에서 존스(Jones) 박사 밑에서 실험실 테크니션(technician)로 일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실험을 설계하고 실험도 혼자서 다 수행했다. 하지만 존스 박사가 모든 공헌인정(credit)을 가져갔다: 실험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엘리자베스가 실험용 유리기구나 닦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런 착취 상황이 계속되자 엘리자베스는 크게 분노했다. 심지어 존스 박사는 엘리자베스에게  성적 접근(sexual approach)까지 했다. 존스 박사 밑에서 일하던 다른 대학원생들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는데, 이를테면 그녀는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존스 박사의 착취행위 중 극히 일부만을 극복한 것일 뿐이다. 이후에 엘리자베스는 실험실과 학교를 그만뒀고, 과학 분야도 떠났다. 

다섯 번째 사례

호주 출신의 페니(Penny)는 미국 소재 명문대학교의 저명한 사회학자 브라운(Brown) 박사 밑에서 임시직으로 근무했다. 브라운 박사가 아이디어를 던져주면 페니는 해당 주제를 연구한 후 논문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페니는 브라운 박사의 아이디어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경우도 많았다). 한번은 브라운 박사가 대학의 연구비 지원 담당인 킹(king) 박사의 호의를 사고 싶어 했다. 브라운 박사는 페니의 연구 중 하나를 학과 보고서로 활용했다. 이 보고서의 저자는 브라운과 킹으로 기재됐다. 

여섯 번째 사례

알렉스(Alex)는 저명한 과학연구기관에서 생화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였다. 알렉스의 상사인 윌슨 박사는 많은 토론회 및 자문위원회에 참석하는 뛰어난 과학자였다. 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에게 돌리기 위해 작성한 논문이 있었는데, 실은 알렉스가 대부분의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는 겸손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논문에서 뺐다. 알렉스는 윌슨 교수가 알아서 자신을 공동저자로 명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윌슨 박사는 아무 말도 없이 해당 논문을 자기 작품으로 만들었다.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되지 않고 있는 학적 착취

학적 착취가 얼마나 일반적일까? 이 현상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답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종류의 학적 착취는 꽤나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비공식적 증언에 추가로 몇몇 문헌들에 따르면,[3] 권력을 가진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이 거의 또는 전혀 기여하지 않은 연구 논문에서도 공동 또는 단독저자로 명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는 이런 사례들에 대해 꽤 많이 들었다. 

종속적 지위에 있는 연구자가 수행한 과업에 대해서 관리감독자가 과도한 공헌인정을 얻어내는 사례 중에 가장 빈번한 사례는, 고급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지도교수들이 사실은 학생들의 독자적인 연구결과인 것에 대해서 공동저자 또는 단독저자로 끼어드는 경우다. 1973년 론 위튼(Ron Witton)은 이런 형태의 착취행위에 대해 논문을 써서 호주 및 뉴질랜드의 사회학 학술지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위튼에 의해 언급된 착취행위 사례들의 해당 당사자들 중에 한 사람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함에 따라 그 구체적 내용들은 해당 학술지에서 삭제됐다.[4]

많은 남성 학자들의 부인들이 문헌 검색이나 비평 및 토의, 아이디어 제공, 논문 작성과 타이핑 등의 일로 남편들의 연구에 기여하곤 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주 소수의 사례들에서만 공식적으로 공헌인정을 받아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5] 

이와 관련해 로빈 모건(Robin Morgan)은 아우렐리아 플래스(Aurelia Plath)의 극단적인 사례를 기록한 바 있다. 플래스는 ‘집에 부친 편지들(Letters Home)’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면서 “남편의 책을 위해서 모든 정독과 필기를 담당했으며 초안을 작성했고 원고의 최종본도 직접 넘겼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남편인 오토 플래스(Otto Plath)는 약간의 교정을 보고 몇몇 각주를 추가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지어 오토 플래스는 책의 타이틀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단독 저자로 집어넣었는데, 이런 행태도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부인이 쓴 글을 남편이 가로챈 또 다른 사례는 낸시 밀포드(Nancy Milford)의 흡입력있는 책 ‘젤다: 전기(Zelda: A Biography)’를 통해서 폭로되었다(젤다의 남편은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진 스콧 피츠제럴드였다).[6]

학적 착취에 대한 논의가 왜 드물까? 첫째, 이 현상을 폭로하는 것이 착취자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착취자들은 대부분 권력을 갖고 있으며, 암시적이거나 때로는 명시적인 위협으로도 폭로를 막을 수 있다. 추천서를 안 좋게 써준다던지, 명예훼손 소송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학적 착취는 지금껏 대중들에게 잘 포장되어 알려진 상아탑의 고상하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와 완전히 대조된다. 설사 이런 학적 착취를 평소에 비판하고 반대해온 학자들이라도 이 문제가 너무 불거져서 학계의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학적 착취 행위에 대해 연구하는 일이 학계의 기존 규율이나 전공과 맞지 않다. 학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조사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적 임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으로, 일부 착취 행위는 너무 만연한 것이어서 피착취자들조차 그 일을 그냥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상아탑 밖의 세계에서도 하급자의 업무나 아이디어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 행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국회의원들이 발표하는 성명 또는 연설은 대부분 보좌관들이 작성하고, 고위 관료들이 발표하는 보고서나 칼럼은, 물론 대외적인 저자 표시는 그들로 되어있어도 보통은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부하 직원들이 작성한다. 지적 업무에 있어서 권력 또는 지위 차이(기업들과 주 정부에서 특히 극심하다)가 존재하는 그 어디에서도 착취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7] 



학적 착취가 암시하는 것

만약 학적 착취행위가 상아탑에서 상당히 만연한 일이라면, 이것은 학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를 암시한다. 

첫째, 상아탑이라는 곳이 훌륭한 도덕적 과정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그저 전문가적 책임감과 기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일단 올바른 행실을 하고 있을 것으로 대중에게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착취를 폭로하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그 어떤 비공식적인 대응수단 이나 공식적인 대응수단이 많지 않다. 만약 그런 방안들이 있었다면 그로 인해 착취가 이미 저지됐을 것이다. 

둘째, 종신교수직을 보장받은 정교수들은 학적 착취로부터 일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교수들은 학적 착취에 저항한다고 해서 보복성으로 쉽게 해임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교수들의 힘도 다른 학생, 조교, 부인 등 착취되는 이들에 대해서까지 보호막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셋째, 착취는 학계의 위계질서와 명백한 연관이 있다. 착취 피해자들의 대다수는 견습 과정에 있는 이들이다. 학문적 담론은 학문적 기여의 질에 바탕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학문적 기여를 했다고 여기지는 이들의 공식적 지위 또는 다른 캐릭터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상아탑의 학인들 사이에서는 평등한 학문적 상호작용 모델로서의 적실성(的實性, relevance)을 무색케 만들어버리는 강한 정치권력의 격차가 존재한다.[8] 착취는 이러한 권력의 격차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로, 더구나 권력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상대적으로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더 많은 공헌인정을 제공하고, 앞서 나갈 기회가 가장 적은 약자들로부터 공헌인정을 수탈하기 때문이다. 

넷째, 학계의 위계질서로 인한 결과로서의 착취는 성차별 및 인종차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 학계에서 높은 지위는 남성과 백인, 중산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 및 소수인종은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 이런 위계적인 권력관계로 인해 은밀한 방식으로써 성적-인종적 차별이 일어난다: 여성들과 소수인종들이 일궈낸 업적이 이미 특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력을 더 보강하는데 이용됨으로서 기존의 위계질서를 유지시키고 정당화시키는 것이다.[9]

다섯 번째, 높은 연구 성과를 냈다고 포장된 많은 학자들 중에서는 많은 하급자들을 두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무비판적으로 칭송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배우자들, 조교들, 학생들의 아이디어나 업적에 근거해서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거둔 유명한 학자들이 얼마나 될까?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되기 전까지는 논문발표횟수와 인용횟수만을 연구능력의 정확한 지표로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감사의 말 Acknowledgements

필자는 여기에 묘사된 사례들과 관련된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올바로 묘사되도록 하는데 있어 많은 고언을 해준데 대해서 깊이 감사한다. 필자는 앤 베이커(Ann Baker), 클라이드 맨웰(Clyde Manwel), 그리고 세드릭 퓨(Cedric Pugh)로부터도 본문 내용과 관련하여 유용한 고언을 얻었다.


참고문헌 References

본 챕터와 관련하여 편집본이 다음 학술지에 발표됐다. "Exploiting the academic peons", Australian Society, vol. 2, no. 9, pp. 28-9 (1 October 1983).


[1] Clyde Manwell and C. M. Ann Baker, "Honesty in science", Search, vol. 12, no. 6, pp. 151-60 (June 1981); Brian Martin, "Plagiarism and responsibility", Journal of Tertiary Educational Administration, vol. 6, no. 2, pp. 183-90 (October 1984).

[2] William Broad and Nicholas Wade, Betrayers of the Truth: Fraud and Deceit in the Halls of Science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2 (윌리엄 브로드, 니콜라스 웨이드 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미래M&B 출판사) 2007년도 국내출간); Manwell and Baker, note 1; Michael J. Mahoney, "Psychology of the scientist: an evaluative review", Social Studies of Science, vol. 9, pp. 349-75 (1979).

[3] 다음 어느 익명의 저자가 보낸 편지를 보라. Drug Intelligence and Clinical Pharmacology, vol. 11, p. 244 (1977). (필자는 클래이드 맨웰과 엔 베이커가 이 참고문헌에 대해서 언급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한다.)

[4] Ron Witton, "Academics and student supervision: apprenticeship or exploitation?", Australian and New Zealand Journal of Sociology, vol. 9, no. 3, pp. 70-3 (1973).

[5] Hanna Papanek, "Men, women, and work: reflections on the two-person career",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 78, no. 4, pp. 852-72 (January 1973); Martha R. Fowlkes, Behind Every Successful Man: Wives of Medicine and Academ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0).

[6] Robin Morgan, Going Too Far: The Personal Chronicle of a Feminist (New York: Random House, 1977), p. 192.

[7] Charles Goodell, Political Prisoners in America (New York: Random House, 1973), p. v (Acknowledgements): (찰스 구델의 ‘감사의 말’에서) “나는 마이클 스미스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가 없이는 이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충실하고 정열적으로 우리의 길고 긴 토론을 통해 나온 아이디어들을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시켰고, 많은 기여를 그 자신의 . . . 그는 말 그대로 그의 인생의 일 년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 - 그렇다면 왜 마이클 스미스를 공동저자로 기재하지 않았는가? 아마도 그가 “단지” 뉴욕 변호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찰스 구델은 잘 알려진 미국의 국회의원이었던 반면에 말이다. 

[8] Brian Martin, "The scientific straightjacket: the power structure of science and the suppression of environmental scholarship" Ecologist, vol 11, no 1, pp. 33-43 (Jan/Feb 1981).

[9] 다음은 학계와 과학계에서의 성차별 사례 연구들이다: Joan Abramson, The Invisible Woman: Discrimination in the Academic Profession (San Francisco: Jossey-Bass, 1975); Anne Sayre, Rosalind Franklin and DNA (New York: Norton, 1975).







논문표절 문제를 다룬 어빙 헥삼 교수의 논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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